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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인문학 13 - 예루살렘, 신과 인간 사이의 도시 예루살렘은 지구 위의 한 점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깊은 갈망과 질문이 집약된 상징적 공간이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이라는 세 종교의 성지이자, 수많은 전쟁과 평화, 기도와 침묵이 교차한 장소인 이 도시는, 단지 특정 종교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간이 ‘신과 인간’, ‘이방인과 공동체’, ‘과거와 미래’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해온 흔적 그 자체다.신을 향한 갈망, 도시로 구현되다예루살렘의 역사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신을 향한 인간의 욕망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다윗 왕과 솔로몬 왕이 세운 예루살렘은 단지 정치적 수도가 아니라, 신이 머무는 성전이 존재하는 도시였다. 인간은 신을 우주 너머의 초월적 존재로만 보지 않았다. 신은 도시에 거하고, 성전 안에 임재하며, 구체적인 장소 속에 ‘존재’할 수 있.. 2025. 7. 23.
정직 - 우리가 잃어버린 것 3 정직은 도덕이 아니라 실존의 태도다우리는 종종 정직을 ‘착한 사람의 덕목’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정직은 단순히 거짓말을 하지 않는 도덕적 규칙이 아니라, 자기 존재에 대한 태도이자, 실존적 결단에 가깝다. 사르트르는 인간이 ‘스스로가 된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기기만을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불성실’이라는 개념으로, 인간이 스스로를 기만하며 사회적 역할에 안주할 때 진정한 자유를 상실한다고 보았다. 여기서 정직은 단순한 말의 진위를 넘어, 내가 나 자신에게 얼마나 진실된 태도로 살아가는지를 묻는 실존의 물음이 된다.왜 정직은 외롭고 고통스러운가정직은 종종 고독과 맞닿아 있다. 우리가 정직함을 회피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관계’를 흔들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고, 타.. 2025. 7. 22.
로베르트 슈만 - 낭만주의의 내면을 걷다 문학과 음악의 융합, 예술의 경계를 넘다로베르트 슈만은 낭만주의 시대의 음악가이자, 동시에 문학과 철학을 사랑한 예술 사상가였다. 그는 젊은 시절 법학을 공부하였으나 문학에 더욱 깊은 애정을 품었고, 시인 노발리스와 장 파울의 작품에 영향을 받으며 문학적 감성을 키워나갔다. 이러한 정서적 토양은 그의 음악 전반에 녹아들었다. 그의 가곡집 '시인의 사랑(Dichterliebe)'은 하이네의 시에 멜로디를 입혀, 시의 내면을 더욱 깊게 확장시킨다. 단순한 반주 이상의 역할을 하는 피아노는 그 자체로 또 하나의 목소리처럼 시적 이미지를 형상화한다.뿐만 아니라, '카니발(Carnaval)'이나 '어린이 정경(Kinderszenen)'과 같은 피아노곡들은 슈만의 상상력과 서사적 구성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 2025. 7. 18.
루이 파스퇴르 -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힘 산업의 문제에서 철학의 질문으로19세기 중엽, 프랑스의 와인 산업은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했다. 수출된 와인이 상하고, 맥주가 썩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국가적 산업 손실로 이어졌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과학자 루이 파스퇴르에게 조사가 의뢰되었다. 그는 기존의 화학 반응 이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패의 원인을 추적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 곧 미생물에 주목하게 된다. 그 출발점은 실용적인 문제 해결이었지만, 파스퇴르의 질문은 점차 더 깊어졌다. “이 생명체는 어디서 오는가?”, “살아 있는 것은 어떻게 생겨나는가?”라는 오래된 철학적 물음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는 당대 과학계와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자연발생설을 실험으로 반박하며, 생명은 결코 무질서하게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입증했다. 이 과정에서 .. 2025. 7. 17.
영화 '조커'(2019)- 한 인간의 몰락과 사회의 거울 존재의 이유를 묻는 철학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은 세상에서 철저히 소외된 존재이다. 그는 코미디언이 되고 싶어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사회는 그에게 살아갈 이유조차 주지 않는다. 정신병력과 감정 장애를 가진 그는 끊임없이 조롱당하고, 학대받으며, 무시당하며, 이 고통은 그에게 “내 존재는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게 만든다.이러한 아서의 내면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니힐리즘(nihilism)과 깊은 관련이 있다. 니체는 전통적 가치가 무너진 시대에 인간이 목적 없이 방황하게 된다고 보았으며, 그 공허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스스로 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서는 그러한 창조의 주체가 되지 못한 채, 무너진 가치 속에서 절망과 분노를 선택하게되고, 결국 그는 ‘조.. 2025. 7. 16.
오페라 '마탄의 사수' - 베버, 독일 낭만주의, 구원 자연과 초자연의 경계, 낭만주의의 울림'마탄의 사수'는 독일 낭만주의 오페라의 시초이자 정수로 불린다. 베버는 이 작품을 통해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인간 내면의 어둠을 음악으로 직조해냈다. 오페라의 배경은 독일의 깊은 숲이며, 이 숲은 단순한 무대 배경이 아니라 인간의 불안과 욕망이 뒤엉킨 무의식의 상징이 된다.주인공 막스는 사격 대회에서 승리해 사랑을 얻고자 하지만, 실력을 의심받고 두려움에 휩싸인 끝에 금지된 '마탄(마법의 탄환)'에 손을 댄다. 그는 어둠의 숲에서 악마 자미엘과 계약을 맺으며 마탄을 얻는다. 이때의 숲은 단지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욕망과 공포를 마주하게 되는 ‘내면의 공간’이다. 낭만주의는 이처럼 자연을 인간의 감정과 정신 세계의 반영으로 보았으며, 베버는 음악과 무대를 통.. 2025. 7.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