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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운명의 힘' - 신의 선택인가, 인간의 선택인가? 베르디의 '운명의 힘'은 사랑과 우연, 복수와 비극이 얽힌 작품이다. 스페인 귀족 알바로와 레오노라는 사랑에 빠지지만, 둘의 도피 시도 중 우연히 방아쇠가 당겨져 레오노라의 아버지가 죽는다. 이 사건은 두 연인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다. 알바로는 도망치고, 레오노라는 수도원에 몸을 숨기며, 오빠 돈 카를로는 아버지의 복수를 결심한다. 결국 세 사람은 끝내 파국에 이르고, 작품은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이처럼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우연의 사건 하나로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의 굴레로 빠져든다.신의 선택으로서의 운명고대와 중세의 전통에서 운명은 신의 질서와 뜻으로 여겨진다. 인간은 그 앞에서 무력하며, 운명은 이미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었다. '운명의 힘' 이라는 제목 자체도 이런 의미를 담고 있다. 레.. 2025. 9. 27.
여성 최초의 노벨상 - 마리 퀴리, 과학과 책임 본명은 마리 스크워도프스카 퀴리, 폴란드 출신의 프랑스 과학자이다. 바르샤바에서 가난한 교육자의 다섯째로 태어난다. 당시 폴란드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러시아의 민족말살을 피해 대학에서 여자를 받아주는 프랑스로 건너가 유학을 시작한다. 소르본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하며 과학자 피에르 퀴리와 결혼하며 그녀의 연구 인생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과학적 도전과 혁신마리 퀴리는 방사능 연구의 선구자로,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하고 방사능(Radioactivity)이라는 개념을 정립한 과학자다. 그녀가 활동하던 19세기 말~20세기 초는 물리학과 화학 분야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던 시기였지만, 연구 환경은 남성 중심적이었고 여성 과학자는 매우 드물었다. 퀴리는 이러한 장벽 속에서도 끊임없는 실험과 관찰을 이어가.. 2025. 9. 26.
낭만주의 음악가 - 슬픔과 아름다움의 공존, 차이콥스키 대한민국 국민이 사랑하는 음악가를 꼽아보자면, 차이콥스키가 분명 순위 안에 들어갈 것이다. 왜 그의 음악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을까? 무엇이 우리를 그에게 집중하게 할까? 그의 음악을 조금만 이해해보자.러시아적 정체성과 낭만주의19세기 러시아는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면서도 자국의 전통을 지키고 싶어 했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차이콥스키는 질문 앞에 선다. '우리는 유럽인가, 아니면 고유한 슬라브 민족인가?' 였다. 이 문제는 당시 러시아의 지식인과 예술인들 모두에게 던져진 질문이었다. 서유럽과 러시아의 사이에서 경계 속에서 그는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만들었다. 그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교향곡 형식과 이탈리아 오페라 기법을 배우면서, 러시아 민속 선율을 음악에 녹였다. 이것은 서유럽 낭만주의의 완.. 2025. 9. 25.
침대 옆에 둔 책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미래가 불확실한 것은 미래를 모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이룰 것 같은 인간이지만, 시간이라는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그렇다면, 불확실한 시간 속에서 인간(나)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질문이 나를 인문학, 철학에 발을 딛게했다. 자기계발서를 찾아 읽기 시작했지만 부족했다. 철학 서적으로 옮겨갔지만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만화로 된 쉬운 철학이야기로 되돌아갔다. 지금까지의 많은 철학자들이 방대한 사유와 이론을 내놓았더라. 그 중 '스토아 철학'이 궁금해졌다. 기원전 3세기경, 아테네 키프로스 출신의 '제논'에 의해 시작된다. 그가 강연하던 장소가 스토아 포이킬레여서 그의 철학은 '스토아 철학'이라 불리게 된다. 이후 '크리시포스' 등이 체계를 확립했고, 로마 시대에는 '세네카', '에픽테토스' 그리고.. 2025. 9. 24.
우리가 잃어버린 것 8 - 인정과 인정 감정의 인정 ― 사람 사이의 따뜻함'인정이 많다'라는 표현은 한국어에서 흔히 쓰인다. 여기서 인정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정, 곧 인정(人情)을 뜻한다. 이 차원의 인정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중요한 정서적 토대다. 유교 전통에서 공자가 강조한 ‘인(仁)’의 덕목도 이와 맞닿아 있다. 타인을 배려하고 함께 살아가는 윤리적 태도가 바로 인정의 본질이다.현대 사회에서도 인정은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작은 배려, 길을 묻는 낯선 이에게 내미는 도움의 손길, 친구의 슬픔을 함께 나누는 마음은 모두 인정에서 비롯된다. 제도와 법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적인 유대의 힘이 바로 이 감정적 인정이다. 문학과 예술 속에서도 인정은 중요한 주제다. 김소월의 시가 독자의 마음에 울림을 .. 2025. 9. 23.
도시 인문학 17 - 재난의 기억과 미학의 도시, 산토리니 산토리니는 흔히 에게해의 낭만적인 휴양지로 알려져 있지만, 그 속에는 인간과 자연, 신화와 역사, 기억과 미학이 얽힌 복합적인 이야기가 흐른다. 이 섬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재난과 생존, 그리고 아름다움을 향한 인간의 의지가 공존하는 공간이다.자연과 문명의 공존산토리니의 기원은 대규모 화산 폭발에 있다. 기원전 16세기경, 미노아 문명을 뒤흔든 테라 화산 폭발은 에게해 일대에 엄청난 파괴를 남겼다. 당시의 재난은 섬의 지형을 지금처럼 반원 모양의 칼데라로 만들었고, 그 위에 인간은 다시 삶의 터전을 일궜다. 흰색 건물이 층층이 쌓여 바다를 향해 내려가는 산토리니의 풍경은 단순히 미적 선택이 아니라, 강한 햇빛을 반사하기 위한 생존의 지혜였다. 푸른 지붕은 하늘과 바다를 잇는 색으로, 인간이 자연의 .. 2025. 9.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