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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인간과 공간을 설계하다 - 르 코르뷔지에 근대 건축의 원칙20세기 초반, 산업혁명과 도시화는 인간의 생활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수많은 인구가 도시로 몰려들었고, 주거 문제는 사회적 과제가 되었다. 르 코르뷔지에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주거는 거주하는 기계”라는 과감한 정의를 내렸다. 이는 집을 단순한 안식처가 아니라 인간의 일상을 효율적으로 지원하는 ‘기능적 장치’로 바라본 시각이었다.그는 불필요한 장식이나 전통적 미학에 얽매이지 않았다. 대신 채광, 환기, 구조적 효율성을 중시하며 합리성과 기능성을 앞세웠다. 이러한 사고는 그의 대표작 빌라 사보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건물은 필로티(기둥) 위에 건물을 띄워 올리고, 옥상 정원을 배치하며, 자유로운 평면과 수평창, 자유로운 입면을 구현했다. 이른바 ‘근대 건축의 5원칙’으로 .. 2025. 9. 13.
오페라 '죽음의 도시' - 상실과 환상의 심리학 작곡가 코른골트의 세 번째 오페라이다. 그의 음악은 풍부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바그너, 슈트라우스, 푸치니의 느낌을 모두 담고 있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주역인 테너와 소프라노의 음악은 일반 성악가들이 소화하기 어렵다고 한다. 테너는 2시간 동안 노래를 불러야 하며 소프라노는 높은 음을 사용하여 두 주역의 캐스팅이 늘 숙제로 남게 하였다. 내용도 일반 멜로드라마가 아니라, 죽음과 기억, 환상 그리고 욕망이 얽힌 복잡한 심리가 담긴 작품이다. 도시와 기억코른골드의 오페라는 벨기에의 브뤼헤를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그려지는 브뤼헤는 단순한 지리적 도시가 아니라, 주인공 폴의 내면을 시각화한 상징적 공간이다. 폴은 일찍 죽은 아내 마리의 흔적을 집 안 곳곳에 보존하며, 그녀의 머리카락까지 성물처럼 .. 2025. 9. 12.
해체와 재구성의 미학 - 파블로 피카소 파블로 피카소(1881–1973)는 스페인 말라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미술 교사였던 아버지의 지도를 받으며 10대 초반 이미 성인 화가에 견줄 실력을 보였다. 그러나 그는 전통적 아카데미 미술에 머무르지 않고, 바르셀로나와 파리에서 예술가 집단과 교류하며 새로운 표현 방식을 탐구했다. 20세기 전반을 관통하며 그는 유럽 미술의 중심에서 혁신을 주도했고, 1973년 프랑스 남부에서 91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무려 8만 점이 넘는 방대한 작품을 남겼다. 그의 삶 자체가 하나의 실험실이자 변신의 연속이었다.전통을 해체하는 눈청년 피카소는 파리에서 빈곤과 고독을 겪으며 청색 시대(1901-1904)를 거쳤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차갑고 우울한 색조 속에 사회적 약자와 방랑자의 모습이.. 2025. 9. 11.
밴드 오브 브라더스 - 전쟁 속 인간과 공동체 필자는 전쟁을 다룬 드라마와 영화를 광적으로 좋아한다. 전쟁을 겪어보지 못했지만 그 안에서 인간의 존재와 공동체, 윤리, 그리고 기억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할 수 있어서다. 2001년 제작된 '밴드 오브 브라더스'는 2차 세계대전 전문역사학자 스티븐 앰브로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 시작부터 끝까지 미 육군 제 101공수사단 506연대 소속의 이지 중대의 이야기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호흡을 맞췄던 스티븐 스필버그와 톰 행크스가 제작을 맡아 완성도 높은 명작이 탄생한다. 제작비 1억 2천 5백만 달러 (한화 1,500억)로 TV 드라마의 지평을 크게 넓혔다. 공동체와 우정 – 극한 속의 인간적 유대전쟁은 인간을 고립시키고, 개인을 무력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지 중대의 병.. 2025. 9. 10.
아인슈타인 - 별과 인간 사이에 선 사상 20세기는 과학이 인류 문명의 지형을 바꾼 시대였다. 그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 바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다. 많은 이들에게 그는 천재 물리학자, 상대성 이론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지만, 인문학적 시선으로 바라본 아인슈타인은 과학의 한계를 넘어선 사상가이자 인간적인 철학자였다. 그의 업적은 단순한 과학적 발견을 넘어,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과 인간 존재에 대한 사유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시간과 공간을 다시 쓴 철학적 혁명뉴턴 이후 세계는 절대적인 시간과 공간 위에 질서 있게 움직이는 기계와 같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이 믿음을 뒤흔들었다.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이지 않으며, 관측자와 관계 속에서 변한다는 사실은 인간이 세계를 바라보는 근본 틀을 바꾸었다. 이는 과학의 성취이자 .. 2025. 9. 9.
용기-우리가 잃어버린 것 6 인류의 역사와 문명 속에서 ‘용기’는 늘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해왔다. 그것은 단순히 두려움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두려움을 뚜렷하게 인식하면서도, 그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행동하는 힘에서 용기는 비롯된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용기를 탐구한다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그리고 공동체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태도를 탐색하는 일과 맞닿아 있다.고대 철학에서의 용기플라톤은 '국가'에서 지혜, 절제, 정의와 함께 용기를 네 가지 핵심 덕목 중 하나로 꼽았다. 그가 말하는 용기는 무모한 행동과는 다르다. 그것은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고, 무엇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는지를 아는 분별력, 곧 지혜와 결합된 덕목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용기를 중용으로 설명했.. 2025. 9.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