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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우리가 잃어버린 것 15 - 희망, 판도라의 상자

by Polymathmind 2025. 11. 24.

고대 그리스의 판도라 신화는 대개 외부에서 인간에게 닥친 비극의 기원담으로 읽혀왔다. 상자를 연 판도라의 호기심 때문에 무수한 재앙이 세상으로 퍼졌다는 구조는, 인간의 고통을 설명하는 하나의 신화적 장치였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다시 들여다보면, 단순한 신의 벌이나 여성에 대한 경고로 보기보다 훨씬 깊고 내면적인 의미가 드러난다. 판도라의 상자를 ‘인간이라는 존재의 마음’으로 재해석할 때, 희망이 왜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는지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해석이 가능해진다.

우리가 흔히 “상자를 열었다”고 말할 때 떠올리는 이미지는 하나의 물리적 용기(사실은 항아리다)다. 하지만 이를 인간의 내면에 비유하면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상자 속에 존재하던 모든 재앙들(질투, 불안, 고통, 두려움, 악의)이란 결국 인간 존재가 본래부터 품고 있던 두려움들이다. 이 정념들은 판도라가 덮개를 연 순간 갑자기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표면 위로 떠오른 실제 존재의 조건이었다. 상자가 열렸다는 것은 인간이 ‘세계와 마주하는 순간’을 상징한다. 세계와 접촉하는 경험이 시작되면서, 인간 안에 잠재되어 있던 어둠과 연약함이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장면은 그다음이다. 재앙들이 쏟아져 나오는 혼란 속에서 상자가 다시 닫혔고, 그 바닥에는 희망만이 남았다고 전해진다. 전통적으로는 판도라가 겁에 질려 급히 닫았다고 읽어왔지만, 이 사건을 인간의 실존과 연결해 보면 새로운 질문이 떠오른다. 혹시 상자를 닫은 존재가 판도라가 아니라 ‘인간’ 자체는 아니었을까? 인간은 갑작스레 드러난 고통과 감정의 홍수를 모두 받아들일 수 없었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덮개를 닫았던 것은 아닐까? 이 해석은 상자를 단순한 신화적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형성한 스스로의 의지로 바꾼다.

이 관점에서 희망이 마지막으로 남겨졌다는 사실은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희망은 왜 바깥으로 퍼져나오지 않고 상자 안에 남아 있었을까? 그것은 희망이 원래부터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에 자리한 힘이기 때문이다. 희망은 외부의 조건이나 신의 선물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품고 있고, 스스로 보호해야 하는 마지막 가능성이다. 인간은 모든 재앙이 터져 나오는 그 순간에도 희망만큼은 잃지 않기 위해 상자를 닫았다. 다시 말해, 인간은 고통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 선택만큼은 자기 손으로 다시 열수 있었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판도라 신화는 단순히 ‘재앙의 출처’를 설명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희망의 기원을 인간 내면에서 찾는 철학적 이야이다. 인간은 수많은 상처와 불완전성을 안고 살아가지만, 그 밑바닥에는 언제나 희망이라는 미세한 빛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 희망은 누가 대신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닫은 우리의 선택이다. 우리가 희망을 밖에서 찾지 않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희망은 외부의 약속이나 우연적 행운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상처 속에서도 마지막으로 붙잡아두는 내적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희망은 '아직 아님'(Not yet)으로 이야기한다. 스스로 하나의 가능성을 꺼낼 수 있는 힘이라 한다. 

결국 인간은 판도라의 상자와 같다. 우리는 수많은 감정과 고통을 품고 있지만, 가장 깊은 곳에는 결코 외부로 흩어지지 않는 희망이 있다. 그리고 그 희망은 언제나 우리가 스스로 지켜온 것, 잃지 않기 위해 닫아버린 상자 속에서 조용히 살아 움직이는 힘이다. 이 신화가 말해주는 것은 단 하나다. 희망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으로 우리의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희망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를 향한 일말의 가능성이다. 그래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동력이고 불완전한 미래의 동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