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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131

과학과 철학의 경계에서-조선의 하늘을 읽는 법 하늘은 권위다: 천문도의 정치학조선의 하늘은 단지 자연 현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곧 통치의 상징이자 정당성의 원천이었다. 조선 태조는 개국 직후인 1395년, 조선 왕조의 새 질서를 선포하듯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제작하게 했다. 이 지도는 하늘의 별들을 단순히 나열한 것이 아니라, 인간 세계의 질서와 대응시키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1,400개가 넘는 별들은 28수 체계와 12분야로 정리되며, 하늘과 땅, 인간 세계의 조화를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이는 단순한 천문 관측을 넘어, 하늘의 질서가 곧 땅 위의 질서라는 유교적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었다. 천문도는 과학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정치의 언어였다. 하늘을 읽는 자가 곧 왕이었고, 하늘의 이치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통치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도구가 되었다.하.. 2025. 6. 5.
허블의 시선 - 확장, 침묵 그리고 존재 지구 너머를 응시하는 인간의 의지1990년 4월 24일 NASA가 쏘아올린 허블 우주 망원경은 단순한 관측 장비를 넘어선다. 그것은 인간의 시선을 우주의 심연으로 확장한 기술적 사유의 결정체다. 지상 망원경이 대기의 왜곡에 제한을 받는 반면, 허블은 대기권 밖에서 작동하며 빛의 흔들림 없이 우주의 빛을 포착한다. 이는 인간의 감각 한계를 기술로 극복한 상징이며, '보는 것'의 철학적 의미를 다시 묻게 만든다. 플라톤은 감각을 넘어선 이데아의 세계를 상상했지만, 허블은 기술로 감각의 벽을 넘었다. 인간은 더 멀리, 더 깊이 바라보고 싶어 하는 존재다. 이 '시선의 확장'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우주의 일부라는 자각에서 출발한 질문이자,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 2025. 6. 4.
낭만주의 음악가 - 프란츠 슈베르트, 시와 음악, 감정 짧고 조용했던 천재의 생애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 1797–1828)는 오스트리아 빈 근교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 도시 안팎에서 보냈다. 학교 교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교육을 받았으며, 음악적 재능이 일찍부터 두드러졌다. 그는 빈 궁정 예배당 성가대원이었고, 안토니오 살리에리에게 작곡을 배웠다. 그러나 정규 교육보다는 주변의 음악가들과 친구들 속에서 스스로를 다듬었고, 20대 초반부터는 교사직을 버리고 본격적인 작곡 활동에 나섰다. 그는 거대한 후원자도, 국제적인 명성도 없었지만, 내면의 감정과 시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데 삶을 바쳤다. 31세의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는 약 1,500곡에 달하는 작품을 남겼으며, 사후에야 비로소 그 진가가 드러나 낭만주의 음악의 선구자로.. 2025. 6. 3.
낭만주의 건축가 - 카를 프리드리히 쉰켈, 이성의 질서, 낭만의 감성 카를 프리드리히 쉰켈: 이성 속에 깃든 낭만카를 프리드리히 쉰켈(1781–1841)은 독일의 건축가이자 화가, 무대 디자이너, 도시계획가로서, 19세기 초 유럽 건축사에서 중요한 전환기를 이끈 인물이다. 그는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경계에 선 독창적인 사유로, 독일 건축에 ‘이성적 질서’와 ‘시적인 감성’을 동시에 불어넣은 보기 드문 인물로 평가된다. 그의 건축은 단순한 양식 모방을 넘어서, 철학과 역사, 예술이 조화를 이루는 하나의 문화적 이상을 제시했다. 즉 그리스 건축이 갖는 고전 양식으로서, 거기에 장엄하고 개성적인 양식을 첨가시켜 웅대한 건축을 완성한다. 이 철학은 19세기 말의 신건축 운동에 영향을 준다.이성적 아름다움의 구현: 신고전주의의 계승자쉰켈은 처음에 화가를 꿈꾸었지만, 건축을 통해 .. 2025. 6. 2.
오페라 '사랑의 묘약' - 사랑의 본질 그리고 코믹 오페라 오페라 '사랑의 묘약'벨칸토 오페라의 거장, 가에타노 도니제티(1797~1848)는 19세기 초 이탈리아 오페라계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그는 약 70편이 넘는 오페라를 작곡했으며, 그중에서도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 '돈 파스콸레' 와 함께 '사랑의 묘약(L’elisir d’amore, 1832)' 은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이 오페라는 단순한 유희를 넘어선 인간 본성과 사회 구조에 대한 풍자와 성찰을 담고 있어, 웃음 뒤에 은근한 울림을 남긴다. '사랑의 묘약'은 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순박한 청년 네모리노가 부유하고 지적인 여성 아디나의 사랑을 얻기 위해 ‘사랑의 묘약’을 찾는 이야기다. 이 묘약은 사실 단순한 포도주에 불과하지만, 네모리노는 그것이 주는 믿음과 자신감으로 인해 점차 변해간.. 2025. 5. 30.
도시 인문학 8 - 샌프란시스코, 새로운 철학, 자유 그리고 경계 기술의 도시, 샌프란시스코샌프란시스코는 단지 지리적 도시가 아니라 하나의 사유 실험장이다. 고대 아테네가 이성과 논쟁의 도시였다면, 샌프란시스코는 기술과 존재에 대한 새로운 질문들이 발생하는 장소다. 실리콘밸리의 심장부와 맞닿은 이 도시는, 우리가 익히 알던 ‘인간다움’의 경계가 가장 먼저 도전받는 곳이기도 하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해 대화하고, 자율주행차가 거리를 달리며, 알고리즘이 사람을 채용하는 이 도시는 과연 인간을 어떻게 다시 정의하게 만드는가?철학은 본래 존재와 의미, 윤리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는 기술을 통해 그 질문을 일상의 수준으로 끌어내린다. 예컨대 AI 채팅봇이 친구처럼 대화할 수 있다면, 감정과 의식은 오직 인간만의 전유물인가? 스마트도시의 감시 기술은 효.. 2025. 5.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