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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215

우리가 잃어버린 것 10 - 시간의 끝 며칠 전, 영화 '맨 프롬 어스'의 에세이를 쓰면서 이 질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시간은 누가 정의했는가?'였다. 주인공 존 올드맨(크로마뇽 인)은 14,000년의 시간을 살아왔다. 그의 시간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인간이 정의 내렸다. 시간이란 자연의 반복으로 인간이 그 의미를 정의하며 과학으로 정식화한 것이다.시간을 처음 정의한 것은 고대인들이었다. 낮과 밤에 보이는 태양, 달,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주기적 질서를 발견한다. 그것을 기록하면서 측정하고, 오랜 시간을 두고 변화를 찾아낸다. 해시계, 물시계는 자연의 반복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최초의 장치였다. 즉, 시간 정의의 시작은 이미 정해진 자연의 반복을 인간이 받아 적은 것이었다. 플라톤은 시간을 '영원의 움직이는 형상'이.. 2025. 10. 6.
오페라 '가면 무도회' - 가면 속의 의미와 현대의 익명 요즘 대한민국은 '익명의 제보자'라는 가면의 늪에 빠졌다. 이젠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구분을 할 수 없다. 이젠 지쳐간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누군가는 우리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아니, 만들어져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대는 언제나 있었다. 실망하고 놀랄 일이 아니다. 무한 반복되고 있다. 오페라 '가면 무도회'를 보며 가면(진실, 거짓)의 의미를 보자.베르디의 오페라 '가면 무도회(Un Ballo in Maschera)'에서 가면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욕망과 사회적 역할을 숨기고, 진실과 거짓이 교차하는 극적 장치다. 총독 리카르도, 아멜리아, 레나토 모두 가면 뒤에서 자신의 감정과 목적을 숨기지만, 결국 그 속의 진실과 욕망이 폭발하며 비극을 만들어낸다. 화려한 무도회장.. 2025. 10. 4.
도시 인문학 18 - 오사카, 웃음과 상인의 철학 도시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그 속에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과 생활, 그리고 정신이 쌓여 형성된 문화적 유산이다.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의 제3의 도시 오사카는 바로 그런 의미에서 독특한 결을 지닌다. 교토가 제국의 정신적 수도였고, 도쿄가 근대 이후 정치·경제의 중심으로 성장했다면, 오사카는 늘 “생활과 사람”의 도시였다. 이 도시는 상업과 웃음, 그리고 다문화적 개방성 속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축해왔다. 상인의 도시에도 시대, 오사카는 “천하의 부엌”이라 불렸다. 일본 각지에서 모여든 쌀과 물자가 이곳에서 거래되었고, 유통의 중심지로서 일본 경제의 심장 역할을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순한 부의 축적이 아니었다. 오사카 상인들은 신뢰를 무엇보다 중시했으며, “돈은 돌고 도는 것이지만, 신용은 쌓.. 2025. 10. 3.
영화 '맨 프롬 어스' - 불멸, 인간의 조건 2007년 미국에서 가장 가성비가 좋은 영화가 개봉한다. 약 20만 달러, 제목에 어스(Earth)가 들어가는데 저예산 영화다. 화려한 장면이나 특수효과가 전혀 없는 작품이다. 무대는 오직 한 교수의 집 거실이며, 영화의 전개는 대화만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단조로운 설정 속에서 영화는 인류의 역사와 종교, 철학을 아우르는 깊은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주인공 존 올드맨은 동료 교수들에게 자신이 14,000년을 살아온 크로마뇽인이라고 고백한다. 늙지 않고 세월을 건너 살아온 그는 인류사의 주요 순간들을 직접 경험했으며, 심지어 역사적·종교적 인물들과 얽혀 있었다고 주장한다. 시간과 인간의 유한성존은 수천 년을 살아오면서 한 시대의 탄생과 몰락을 수없이 목격했다. 그는 인간과 관계를 맺고도 반드시 이별해야 .. 2025. 10. 2.
추석 연휴 추천 책(추추책) - '프랑스사 산책' , 유럽의 심장 이번 길고 긴 추석 연휴를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SNS에 2년 전, 사진이 보였다. 파리 출장을 갔을 때의 사진이 여러 장 올라왔다. 순간 파리 출장을 위해 구매했었던 뒤마의 '프랑스사 산책'이 생각이 났다. 끝까지 못 읽었던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저 역사책처럼 읽어 내려갔던 죄책감도 있었다. 이번 추석 연휴에는 이 책을 읽을 작정이다.알렉상드르 뒤마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역사적 배경과 인물들을 등장시켜 생생하게 선보이는 탁월한 재능을 가졌다.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 희곡 '앙리 3세와 그의 궁전'을 무대에 올려 호평을 받는다. 그리고 우리 잘 아는 '삼총사' , '몬테크리스토 백작' 등을 발표하며 소설가로 입지를 굳힌다. 뒤마의 250여 편의 작품 .. 2025. 10. 1.
우리가 잃어버린 것 9 - 기억과 망각 어린이 오페라를 지방 순회공연을 하면서 질문이 생겼다.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은 나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지금 어두운 객석에서 귀여운 도깨비들을 보면서 음악을 듣는 저 아이들의 기억은 그들을 어떻게 만들어낼까? 그리고 어른이 된 우리는 어떤 것을 망각하며 살고 있을까? 망각은 과연 기억을 지우는 것일까?시간 속 존재와 기억 그리고 망각플라톤은 기억을 단순한 과거의 회상이 아니라, 영혼 속 진리의 재인식으로 보았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인간이 세계와 자신을 이해하는 첫 번째 장치이며, 순수한 감각과 감정 속에 담긴 세계관은 성인으로서의 판단과 행동의 밑거름이 된다. 반대로 니체는 망각을 삶의 능동적 힘으로 보았다. 성인이 되며 불필요하거나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는 행위는 정신적 균형과 창조적 에너지를 확보하는.. 2025. 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