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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215

도시 인문학 17 - 재난의 기억과 미학의 도시, 산토리니 산토리니는 흔히 에게해의 낭만적인 휴양지로 알려져 있지만, 그 속에는 인간과 자연, 신화와 역사, 기억과 미학이 얽힌 복합적인 이야기가 흐른다. 이 섬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재난과 생존, 그리고 아름다움을 향한 인간의 의지가 공존하는 공간이다.자연과 문명의 공존산토리니의 기원은 대규모 화산 폭발에 있다. 기원전 16세기경, 미노아 문명을 뒤흔든 테라 화산 폭발은 에게해 일대에 엄청난 파괴를 남겼다. 당시의 재난은 섬의 지형을 지금처럼 반원 모양의 칼데라로 만들었고, 그 위에 인간은 다시 삶의 터전을 일궜다. 흰색 건물이 층층이 쌓여 바다를 향해 내려가는 산토리니의 풍경은 단순히 미적 선택이 아니라, 강한 햇빛을 반사하기 위한 생존의 지혜였다. 푸른 지붕은 하늘과 바다를 잇는 색으로, 인간이 자연의 .. 2025. 9. 22.
칸딘스키 - 추상의 음악 현실을 넘어선 시각 칸딘스키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법학과 경제학을 공부했지만, 예술이 가진 내적 울림에 매혹되어 화가의 길을 택했다. 1910년 무렵, 그는 전통적 구상 회화의 한계를 넘어, 세계 최초의 추상화를 시도했다. 이는 단순한 형식의 변화가 아니라, 예술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사건이었다. 이전까지 예술은 ‘현실의 모방’에 가까웠지만, 칸딘스키에게 예술은 대상을 재현하지 않고도 인간의 영혼과 감정을 울릴 수 있는 언어였다. 따라서 추상미술은 단순한 기교가 아니라, 예술의 본질을 묻는 철학적 혁신이었다.음악에서 찾은 예술의 길칸딘스키는 예술이 ‘내적 필연성(inner necessity)’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색과 선은 단순히 눈을 즐겁게 하는 장치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직접 울리는 .. 2025. 9. 20.
영화 '포레스트 검프' - 운명, 인간성 그리고 역사 1994년 10월 영화 '포레스트 검프'가 개봉한다. 주인공 포레스트는 경계선 지능을 가진 사람으로 인간승리의 이야기지만, 그 속에는 현실 풍자도 들어간 영화다. 미국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나열하며 사실적인 효과를 극대화하여 포레스트가 실존 인물처럼 그려진다. 그의 인생도 인상 깊지만, 주변 인물들이 포레스트로 인해 평온을 찾기도 한다. 견딜 수 없는 고난에 빠진 주변 인물들도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도 그려져 있다. 우연 속의 선택포레스트 검프의 삶은 수많은 우연과 기적적 사건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낮은 지능과 단순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전쟁 참전, 운동선수, 사업가, 정치적 사건 참여 등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영화는 인간이 환경과 우연 속에서 살아가지만, 동시에 자신의 선택을 통해 삶의 방향.. 2025. 9. 19.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 사랑, 죽음 그리고 구원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가 1762년 빈에서 발표한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는 오페라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한 작품이다. 당시 오페라는 화려한 성악 기교와 장식적인 아리아에 치중하여 극의 흐름과 감정 전달이 약화되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글루크는 이러한 오페라 관습을 비판하며, 음악과 드라마가 조화를 이루는 ‘개혁 오페라’(opera reform)를 제안했다.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는 그 개혁의 대표작으로, 단순하고 투명한 선율과 강렬한 합창,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음악을 통해 극적 긴장을 강화하였다. 작품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아리아 Che farò senza Euridice (에우리디체 없이 무엇을 하리오)는 화려한 기교 대신 깊은 정서를 전하며, 오페라가 단순한 유희적 장르가 아닌 .. 2025. 9. 18.
20세기 유전학과 그 철학적 의미 20세기는 과학사에서 혁명의 세기라 불린다. 물리학에서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 기존의 세계관을 뒤흔든 것처럼, 생명과학에서도 분자생물학과 유전학의 발전은 인간이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생명을 설명하는 언어가 신비와 직관에서 정보와 코드로 전환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과학적 성취에 그치지 않고, 인간 존재의 의미를 다시 묻는 철학적 사유로 이어졌다.과학으로서의 유전학19세기 말까지 생명은 주로 생리학적 현상이나 철학적 사색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20세기 초, 멘델의 유전법칙이 재발견되면서 새로운 전환이 시작된다. 멘델은 완두콩 실험을 통해 형질이 일정한 법칙을 따라 전해진다는 사실을 밝혔지만, 당시에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1900년대에 이 법칙이 다시 조명되.. 2025. 9. 17.
우리가 잃어버린 것 7 - 공감 필자가 8월 마지막 주에 대전예술의전당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을 연출했다. 늘 작품을 손에서 내려놓은 순간까지 관객의 반응과 생각을 신경쓰게 된다. 하지만 손에서 벗어나는 순간(공연 시작 종이 울릴 때)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더 이상 내가 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럴까? 나는 나의 작품을 편히 관객석에서 본 적이 거의 없다. 무대 뒤에 있거나, 대기실에서 작은 화면으로 무대를 바라본다. 문득 질문 생겼다. 내가 주는 공감과 동감은 무엇일까? 그리고 관객이 느끼는 공감과 동감은 무엇일까?공감과 동감공감의 정의는 타인의 감정을 자신의 내면에서 이해하고 체험하는 것이고, 동감의 정의는 상대방의 의견이나 감정에 마음이 같다고 느끼거나 동의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공감은 감정을 함께 느.. 2025. 9.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