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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우리가 잃어버린 것 14 - 희생

by Polymathmind 2025. 11. 10.

필자의 글에 달린 댓글이 글의 소재가 되었다. 영화 '마션'의 에세이에 달린 댓글이었다. 한 사람을 위해 다수의 희생을 보여주는 영화여서 조금 불편했다고 한다. 희생을 해야하는 정당성을 설명해줬더라면 편했을 것이라 했다. 일단 정당성이 설명되면 좋겠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하나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이 생길 것 같다. 희생을 강요당할 수 있겠더라. 

희생은 오랫동안 인간이 가진 가장 숭고한 행위로 여겨져 왔다. 고대의 제사에서부터 종교적 구원, 전쟁의 영웅 서사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자신을 내어주는 행위를 통해 공동체와 신에게 헌신했다. 그러나 근대 이후, 희생은 점차 ‘비합리’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이익과 효율이 삶의 척도가 된 사회에서, 희생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닌 손해로 간주된다.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는 법은 배웠지만,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잃는 감각은 잃어버렸다.

그런데 때로 역사는 반대로 움직인다.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다수가 목숨을 잃는 일이 일어난다. 전쟁 중 구조를 위해 남은 병사들, 의료진의 감염을 무릅쓴 진료, 혹은 권력자가 살아남기 위해 희생된 이름 없는 사람들. 이러한 경우 우리는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까? 다수를 위해 한 명이 희생되는 것은 ‘합리적’이라 여겨지지만, 한 명을 위해 다수가 희생되는 순간, 우리의 윤리는 혼란에 빠진다. 물론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명백히 비합리적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도덕의 기준이라면, 다수의 희생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칸트의 관점에서 인간은 결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 명의 생명이라도 그 자체로 목적이며, 그 가치는 대체 불가능하다. 결국 이 두 관점은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인간의 생명은 과연 수량으로 측정할 수 있는가?”

그렇다! 희생의 본질은 수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가치의 문제이며, 의미의 문제다. 다수가 죽고 한 명이 살아남았을 때, 우리는 단순히 생존의 결과만을 볼 것이 아니라, 그 선택이 어떤 윤리적 질서를 낳았는가를 물어야 한다. 문제는 오늘날 그 질문조차 사라졌다는 것이다. 희생은 더 이상 도덕적 사유의 대상이 아니라, 통계와 데이터 속의 ‘필요한 손실’로만 남는다.

한 사람을 위해 다수가 희생되는 일은 단지 도덕적 역설이 아니라, 권력의 구조를 드러내는 사건이기도 하다. 희생은 언제나 누군가의 결정으로 이루어진다. 누가 살아남고, 누가 버려질 것인가를 정하는 것은 언제나 권력의 자리에서다. 푸코가 말했듯, 근대의 권력은 죽이는 권력이 아니라 살릴 수 있는 권력이다. 그러나 그 살림의 논리는 언제나 선택적이다. 한 명을 살리기 위해 다수를 버리는 순간, 생명은 더 이상 평등하지 않다. 그것은 ‘희생’이라는 이름을 쓴 선별된 폭력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희생은 무엇일까. 희생이란 누군가를 위해 자발적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행위일 때만 그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오늘날의 희생은 대체로 강요된 것, 혹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환경을 지탱하는 사람들, 돌봄 노동자, 위험을 감수하는 의료인들등 그들의 헌신은 일상의 편안함 속에 감춰져 있다.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의 희생 위에 살고 있지만, 그 사실을 잊은 채 살아간다. 사실 우리가 지금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결과다. 전쟁 속 이름 없이 사라진 이들, 가족을 위해 자신을 버린 부모, 혹은 더 나은 세상을 믿으며 불평등에 맞섰던 사람들. 그들의 삶과 죽음이 쌓여 지금 우리의 시간이 만들어졌다. 희생은 단순한 죽음의 대가가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이어주는 윤리이자,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다리다. 우리가 지금 숨 쉬며 살아 있다는 것은, 과거의 누군가가 자신을 내어주어 우리에게 자리를 만들어주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그 희생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다. 그 희생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누군가가 또다시 대신 아파하지 않도록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인간답게 만드는 일이다. 진정한 윤리란 과거의 희생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보이지 않는 이들을 다시 기억하는 일이다. 한 명을 위해 다수가 희생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누가 살았는가”가 아니라 “누가 잊혔는가”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희생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희생을 통해 인간의 존엄을 사유하던 마음이다.
한 명의 생명을 위해 다수가 죽는 비극 속에서도, 그 질문을 던지는 인간의 의식만이 우리 시대의 마지막 윤리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