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배우 이순재 선생님께서 영면하셨다. 그 분을 추모하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많은 생각이 오고갔다. 컴퓨터 앞에 앉았지만 그 분을 잘 모르는데 어찌 그 분의 인생을 논할까. 그래서 다큐멘터리와 그 분의 인터뷰 등 자료를 찾아보며 조금 아주 조금 알아갔다. 많은 연예인들은 그 분을 스승이라, 선생이라 부른다. 연예인들은 그 분과 인연이 있고, 같은 분야로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나도 어느 새 그 분을 선생님이라 부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스승, 선생은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스승을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삶을 돌아보면, 가장 오래 남는 가르침은 말이나 개념이 아니라 한 사람의 존재 방식에서 비롯된다. 교실 안에서 만난 적도 없고, 이름조차 몰랐을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태도, 시선, 삶의 궤적이 어느 날 문득 우리의 선택을 바꾸고, 생각을 흔들고, 방향을 틀어 놓는다. 그렇다면 참된 스승은 반드시 직접 가르쳐야만 하는가. 아니다. 참된 스승은 말로 가르치기보다, 살아 있음 자체로 가르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시간은 무수한 사람들을 스쳐 지나가게 한다. 어떤 이들은 빠르게 등장했다가 사라지고, 어떤 이들은 오랫동안 그 자리에 머무른다. 그러나 오래 존재했다고 해서 모두가 기억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남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통해 묵묵히 하나의 질문을 남기는 사람이다. “너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너는 끝까지 너 자신일 수 있는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들. 그 질문은 종종 말이 아니라 태도로 전달된다. 그리고 그 침묵 속의 가르침이야말로 가장 깊은 울림을 남긴다.
참된 스승은 스승의 자리에 있지 않아도 된다. 그는 교단에 서지 않아도, 칠판 앞에서 무엇인가를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드러나지 않아도 된다. 그의 삶이 하나의 문장이 되어, 세대와 세대를 건너 조용히 읽히기만 하면 충분하다. 어떤 사람은 예술을 통해, 어떤 사람은 노동을 통해,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일상 속에서 그런 문장을 써 내려간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문장을 읽으며,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혹은 ‘이렇게 살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된다. 그것이 바로 시대가 남긴 가장 위대한 수업이다.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사실 두려운 일이다. 그것은 책임이 따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가장 순수한 형태의 희망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보통 가까운 사람에게 사랑받기를 원하고, 이해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언젠가 만나지 못할 누군가에게, 이름조차 모르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는 마음은, 개인의 욕망을 넘어선 존재의 윤리에 가깝다. 그것은 자기를 넘어 타인을 향하고, 현재를 넘어 미래를 향한 시선이다.
그렇게 보면, 누군가의 삶이 위대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성공이나 명성 때문이 아니다. 그 사람이 남긴 방향성 때문이다.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야 하는지를 말하지 않고, 대신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이 길을 가라”고 명령하지 않고, 단지 자기의 길을 끝까지 걸어감으로써 우리에게 묻는다. “너의 길은 어디인가.” 그 질문 앞에서 후배들은 비로소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어쩌면 참된 스승은 마지막 순간에도 자신이 무엇을 남기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할지 모른다. 그는 단지 오늘을 성실히 살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러나 그 반복된 하루들이 쌓여, 하나의 생이 되고, 그 생이 누군가의 마음속에 씨앗처럼 떨어진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어느 날, 그 씨앗은 뜻밖의 순간에 싹을 틔운다. 사람이 사람에게 남기는 것이란 어쩌면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형태일 것이다.
참된 스승이 된다는 것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하나의 삶을 끝까지 살아내는 일이라고. 흔들리더라도 멈추지 않고, 의심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사라지더라도 어떤 온기를 남긴 채로 사라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시대가 필요로 하는 스승의 모습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나는 묻게 된다. 나와 아무 상관없는 누군가에게, 나는 어떤 흔적으로 남고 싶은가. 이름이 아닌, 말이 아닌, 하나의 태도로 기억되고 싶다.
그것이 아마, 내가 꿈꾸는, 우리가 꿈꾸는 ‘참된 스승’의 모습일 것이다.
* 고 이순재 선생님을 기리며... 25년 12월 1일 월요일, 폴리매스_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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