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나부코' - 욕망, 민족 그리고 신앙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는 단순한 성서 기반 역사극을 넘어, 인간의 심리, 권력 구조, 종교적 가치, 민족적 정체성을 복합적으로 탐구하는 작품이다. 특히 여성 인물 아비가일레와 나부코의 관계, 히브리 민족의 포로 생활, 그리고 권력과 구원의 문제는 서로 얽히며 오페라를 철학적·사회적 사고의 장으로 만든다.

버려진 존재와 권력 욕망

아비가일레는 극 중에서 가장 강렬한 여성 인물이다. 그녀는 나부코의 딸이지만,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고 태어난 사실을 알면서 성장한다. 사랑과 인정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권력만을 추구하게 된다. 아비가일레의 권력욕은 단순한 악행이 아니다. 그녀의 심리는 ‘버림받은 존재가 사회적·정치적 권력을 통해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는 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현대 심리학에서도 관찰되는 ‘결핍과 권력욕의 상관관계’를 극화한 예로 볼 수 있다. 그녀가 히브리 민족을 조롱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장면, 그리고 나부코를 권좌에서 몰아내려는 음모는 단순한 개인적 분노가 아니라, 사회적 억압과 개인적 결핍이 충돌하며 발생하는 비극적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아비가일레는 오페라의 드라마틱한 긴장을 만든다. 청중은 그녀의 폭력적 행동에 충격을 받지만 동시에 인간적 연민을 느낀다. 그녀는 ‘순수한 악’이 아니라, 사랑받지 못한 존재가 권력으로 자기 자리를 찾으려는 불완전한 인간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아비가일레는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인간 심리의 복잡성과 한계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종교, 구원, 민족 정체성의 삼중 구조

오페라 '나부코'는 아비가일레의 개인적 욕망과 함께, 히브리 민족의 집단적 고통과 신앙을 중심에 둔다. 히브리인들은 포로로 끌려가지만, 그들은 노래와 기억을 통해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한다. 특히 'Va, pensiero' 합창은 단순한 음악적 장식이 아니라, 민족적 자각과 희망을 상징한다. ‘조국을 떠난 민족의 생각’이라는 가사는, 정치적 압제와 물리적 억압 속에서도 민족의 기억과 공동체적 정체성이 소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베르디가 작품을 내놓을 당시, 이탈리아는 분열과 외세의 혼란에 있었다. 그리고 통일 운동이 일어나며 이 히브리 노예의 합창은 민족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곡이 된다.

나부코는 자신의 권력 남용과 오만을 인정하고 신 앞에 굴복함으로써, 히브리인들을 해방시킨다. 이는 개인적 회개가 민족 공동체의 구원과 직결된다는 종교적·윤리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아비가일레가 자신의 권력 욕망을 이루지 못하는 결말은, 개인적 집착이 공동체와 윤리적 질서 앞에서 어떻게 한계를 맞이하는지를 상징한다.

또한 베르디는 앞서 심리적 삼중 구조뿐만 아니라, 음악적 삼중 구조로도 정교하게 구현한다. 아비가일레의 독창은 권력욕과 개인적 분노를 드라마틱하게 표현하고, 히브리 민족 합창 'Va, pensiero'에서 집단적 기억과 연대감을 극대화하며, 마지막 나부코의 회개 아리아에서는 신앙과 구원의 순간을 감정적으로 고조시키며 완벽한 구조를 만들어 낸다. 음악적 표현은 각각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얽히며, 극의 철학적 메시지를 강화한다. 청중은 개인과 공동체, 인간과 신의 관계가 긴밀하게 연결된 드라마틱한 구조를 경험하게 된다.

인간적 결핍과 역사적·종교적 구원의 통찰

오페라 '나부코'는 단순한 역사극이나 정치적 오페라가 아니다. 아비가일레를 통해 인간 심리의 결핍과 권력 욕망을, 히브리 민족의 합창을 통해 민족 정체성과 기억의 힘을, 나부코의 회개를 통해 종교적 구원과 윤리적 회복을 보여준다. 세 층위가 교차하며, 이 오페라는 인간과 공동체, 신의 관계를 정치적·심리적·철학적으로 통합한 복합적 구조를 갖는다.

결국 베르디는 '나부코'를 통해, 개인의 결핍과 욕망, 민족의 절망과 희망, 신 앞에서의 인간적 겸손과 회개가 어떻게 서로 맞물리며 역사적·윤리적 의미를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19세기 이탈리아 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인간 사회와 권력, 공동체, 신앙을 사유하게 하는 깊이 있는 메시지를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