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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인상주의 화가 - 르누아르, 빛을 사랑한 아름다움

by Polymathmind 2025. 11. 22.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는 인상주의의 핵심 인물이지만, 단순히 “밝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화가”라는 평가로는 부족하다. 그는 빛을 통해 인간의 온기와 삶의 기쁨을 포착하고자 했던 예술가였고, 그 감각은 인상주의 전체의 정서를 규정할 만큼 강력했다. 그의 초기 인상주의 작품을 보면 색채가 공기 속에서 진동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는 르누아르가 대상의 정확한 묘사보다 관계의 감각, 순간의 떨림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야. 다시 말해, 그는 현실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느낌’을 그린 화가였다. 그의 작품은 인물을 바라보는 따뜻함이 두드러지고, 인간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화가였다. 

아픔 속에서 만들어진 아름다움

르누아르의 후기 작품을 조금 더 보자면, 한 인간이 몸의 붕괴 속에서 어떻게 세계를 긍정하는지를 목격하는 일이다. 인상주의 시절 밝고 경쾌한 색채 속에 스며 있던 즐거움은 말년에 이르러 전혀 다른 깊이를 보여준다. 그는 류머티즘으로 손가락이 굽고 붓조차 제대로 들 수 없었지만, 손에 붓을 묶어가며 그림을 그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르누아르의 예술이 단순한 화풍의 변화가 아닌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사유로 확장되는 순간을 발견하게 된다.

후기 르누아르의 캔버스를 보면 형태가 둥글고 단단하며, 마치 조각에 가까운 질감을 띤다. 많은 비평가들은 이를 “고전주의적 회귀”라고 규정했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은 단순한 회귀가 아니라 인간 몸에 대한 찬미다. 그는 자신의 몸이 망가져 가는 순간에도 타인의 몸(특히 여성의 몸)을 이전보다 더 풍요롭고 온기 있게 그렸다. 인간의 신체가 단순한 물질 덩어리가 아니라, 존재의 아름다움과 생의 의지를 담는 용기라는 사실을 그는 고통을 통해 체득한 것이다.

예술가가 아픔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그릴 때, 그것은 결코 현실을 도피하거나 미화하는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고통이 깊어질수록 그는 세계를 더 부드럽게 포용하려 했고, 그 포용의 방식이 색채와 형태의 변화로 나타났다. 즉, 후기 르누아르는 아픔을 통해 더욱 온화한 세계관을 만들어냈다. 몸이 배신하는 순간에도 그는 아름다움을 믿었고, 그 믿음은 예술로 형상화되었다. 인간은 고통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는 존재이며, 삶의 무게는 예술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는 선언이다. 그의 동시대인 로댕이 “인간의 몸은 진실을 말한다”고 했다면, 르누아르는 “그 몸은 끝내 아름다움을 향한다”고 말한 셈이다.

결국 르누아르의 말기 작품은 단순한 예술적 성취를 넘어 인간 존재의 아름다움에 대한 최후의 고백이다. 그는 육체가 배신하는 순간에도 세계를 부드러운 곡선으로 그렸고, 자신의 고통이 아닌 타인의 생명력을 바라보며 마지막까지 아름다움을 믿었다. 그의 캔버스에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삶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