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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잔니 스키키' - 가족, 욕망과 반전 오페라 '잔니 스키키'와 단테 '신곡'푸치니의 오페라 '잔니 스키키'는 단막의 희극으로, 인간의 욕망과 기지를 해학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단순한 코미디가 아니다. 그 뿌리는 바로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Divina Commedia), 그 중에서도 지옥편 제30곡에 닿아 있다.단테는 ‘거짓말과 사기’를 저지른 자들이 모인 지옥 8번째 의 열 번째 굴(볼지아)에 잔니 스키키라는 실존 인물을 배치한다. 그는 피렌체의 부호 부오소 도나티를 가장해 위조된 유언장을 작성한 죄로 지옥에 떨어진 자다. 단테는 그를 “다른 이의 모습을 흉내 내어 유산을 조작한 자”로 묘사하며, 윤리적·종교적 가치의 위반자로 단죄한다.그러나 푸치니는 이 인물을 전혀 다르게 해석한다. 오페라 속 지안니 스키키는 부자.. 2025. 7. 3.
영화 '인셉션' - 인간 내면으로의 꿈속 여행 현실과 인식 – 우리는 무엇을 진짜라고 믿는가영화 '인셉션'의 가장 큰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현실을 구분할 수 있는가?"주인공 코브는 타인의 꿈속에 침투해 아이디어를 훔치거나 주입하는 ‘마음의 도둑’이다. 그러나 꿈이 너무나 정교해지면서, 꿈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팽이가 멈췄는지, 계속 도는지를 끝내 보여주지 않는 것은 관객에게도 이 질문을 던진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진짜인가?"이 질문은 철학자 데카르트의 회의주의와 닮아 있다. 감각과 경험이 모두 의심스럽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철학적 회의에 그치지 않고, 현실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실존적 결단으로 나아간다. 코브는 결국 "현실이 진짜인지 아.. 2025. 7. 2.
도시 인문학 11 - 베를린, 상처의 기억 그리고 창 베를린과 상처의 건축베를린은 잊지 않기로 선택한 도시다. 단절된 과거, 나뉘어진 공간, 비극의 역사를 도시 그 자체에 새겨 넣었다. 많은 도시들이 전쟁이나 독재의 흔적을 지우려 애쓰는 반면, 베를린은 과거를 지우는 대신 도시의 일부로 남겨두었다. 베를린 장벽의 흔적은 도시 전역에 걸쳐 이어지고, 땅 위에는 장벽이 지나갔던 자리에 금속선이 깔려 있다. 사람들은 매일 그 위를 걷는다. 무심히, 혹은 의식적으로. 과거는 이 도시의 보이지 않는 구조물이자, 시민의 일상과 만나는 물리적 장소다.홀로코스트 메모리얼, 토포그래피 오브 테러(Topography of Terror), 슈타지 감옥 박물관 등은 고통의 기억을 아카이브화하지 않고, 체험 가능한 감각의 공간으로 만든다. 이들은 관람객에게 감정을 주입하지 않는다.. 2025. 7. 1.
낭만주의 미술가-들라크루아, 혼돈 속의 아름다움 열정과 저항의 예술외젠 들라크루아는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낭만주의 화가로, 감정의 격정과 인간 내면의 고통, 그리고 자유를 향한 열망을 화폭에 담아낸 예술가이다. 그는 고전주의가 중시하던 질서와 균형, 이성을 거부하고, 개인의 감정과 상상력, 그리고 현실의 혼란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자 했다. 대표작인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그 상징성을 잘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자유는 이상적인 개념이 아닌, 피와 땀으로 얼룩진 현실 속 인물로 형상화했다. 여신의 발치에는 죽은 민중이, 그녀의 손에는 깃발이 들려 있으며, 이는 자유가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피로써 쟁취하는 투쟁임을 말한다. 들라크루아는 예술이 정치적 현실과 단절되어선 안 된다고 보았으며, 그의 그림은 말 없는 연설문이자 행동이었다. 동방을 .. 2025. 6. 30.
죽음에 대한 사유 -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 인간에게 죽음은 가장 근원적인 공포 중 하나이다.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마지막 문, 존재의 소멸이라는 본질적인 두려움은 인간과 늘 함께했다. 하지만, 때로는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다. 무엇이 두렵기에 죽음을 선택하는 것일까? 대한민국의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은 왜, 무엇이 두려워서 죽음을 선택했을까? 우리가 살아내야하는 삶이 더 공포스러운게 아닐까? 죽음은 모든 고통의 끝, 모든 책임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할 수 있다. 하지만 삶은 계속 마주해야하는 공포이다. 불확실성은 우리에게 더 큰 불안감과 긴장감을 준다. 죽음은 종착역이지만, 삶은 끝없이 펼쳐지는 미지의 길이다. 그래서 다양한 고통의 연속이 계속되고 그것을 견뎌내야하는 과정이 삶이다. 수많은 책임과 의무로 버거워질 때, 삶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 2025. 6. 27.
낭만주의 음악가-쇼팽, 정체성, 고독과 창조 피아노 건반 위에 새긴 영혼의 기록19세기 낭만주의 시대는 격동과 변화의 시기였다. 산업 혁명이 사회 구조를 뒤흔들고, 민족주의적 열망이 유럽 대륙을 휩쓸었으며, 개인의 감성과 자유로운 표현이 예술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폴란드 태생의 프랑스 작곡가 프레데리크 쇼팽은 오직 피아노라는 악기 하나로 시대의 정신과 자신의 영혼을 가장 섬세하고도 강렬하게 기록한 '피아노의 시인'으로 기억된다. 그의 음악은 단순한 선율과 화성의 조합을 넘어, 조국에 대한 그리움, 낭만적 사랑, 그리고 고뇌하는 인간의 내면을 오롯이 담아낸 인문학적 보고라 할 수 있다.정체성쇼팽의 음악은 망명자의 비애와 민족적 정체성이라는 인문학적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룬다. 그는 폴란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천재성을 인.. 2025. 6.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