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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우리가 잃어버린 것 8 - 인정과 인정

by Polymathmind 2025. 9. 23.

감정의 인정 ― 사람 사이의 따뜻함

'인정이 많다'라는 표현은 한국어에서 흔히 쓰인다. 여기서 인정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정, 곧 인정(人情)을 뜻한다. 이 차원의 인정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중요한 정서적 토대다. 유교 전통에서 공자가 강조한 ‘인(仁)’의 덕목도 이와 맞닿아 있다. 타인을 배려하고 함께 살아가는 윤리적 태도가 바로 인정의 본질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인정은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작은 배려, 길을 묻는 낯선 이에게 내미는 도움의 손길, 친구의 슬픔을 함께 나누는 마음은 모두 인정에서 비롯된다. 제도와 법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적인 유대의 힘이 바로 이 감정적 인정이다. 문학과 예술 속에서도 인정은 중요한 주제다. 김소월의 시가 독자의 마음에 울림을 주는 이유는 타인의 감정을 나의 감정으로 느끼게 하는 인정의 힘 덕분이다. 소설이나 연극에서 인물들의 관계와 감정을 따라가며 눈물을 흘리는 것도 결국은 사람 사이의 정서적 연결 때문이다. 인정(人情)은 이렇게 사회를 따뜻하게 묶어주는 보이지 않는 끈이다.

제도의 인정 ― 존재와 권리의 확증

반면, 인정은 또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다. 인정(認定)은 사실과 존재를 공식적으로 승인하고 확증하는 차원을 가리킨다. 철학자 헤겔은 인간의 삶을 ‘인정투쟁’으로 설명한 바 있다. 인간은 자신을 단순히 자아로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인정을 통해서만 자기 정체성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정받지 못한 존재는 불완전하며, 그렇기에 인간은 끊임없이 서로의 인정을 추구한다.

현대 철학자 악셀 호네트는 이를 이어받아 사회 갈등의 근원을 ‘인정의 결핍’에서 찾았다. 사회가 특정 집단의 권리와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때, 그 집단은 배제와 차별에 맞서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여성의 참정권 운동, 흑인 민권운동, 성소수자 인권운동은 모두 사회적 인정을 요구한 투쟁의 역사였다. 여기서 인정은 단순히 행정적 절차가 아니라, 존엄과 평등을 확립하는 사회적 조건으로 작동한다.

예술 역시 이러한 인정의 차원과 긴밀히 연결된다. 저항문학이나 민중예술은 사회가 외면하던 존재를 가시화하고, 공동체가 그들을 인정하도록 요구한다. 한 장의 사진, 한 편의 영화가 소수자의 삶을 드러내고 사회적 공감을 확산시키는 과정은 곧 인정(認定)을 향한 예술의 실천이다.

두 인정의 교차 ― 따뜻함과 공정함의 균형

사람 사이의 인정(人情)과 사회적 인정(認定)은 다른 차원에서 작동하지만, 결국 하나의 축에서 만난다. 감정적 인정만으로는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 아무리 개인이 따뜻하더라도 제도적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차별은 계속된다. 반대로 제도적 인정만 존재하고 감정적 인정이 결여된다면, 사회는 차갑고 비인간적인 기계 장치에 불과할 것이다.

따라서 건강한 공동체란 두 얼굴의 인정이 균형을 이루는 곳이다. 제도가 권리와 존재를 인정할 때, 사람들 사이의 감정적 인정은 더 깊어지고 지속된다. 동시에 사람 사이의 따뜻한 인정이 제도의 변화를 촉구할 때, 사회는 더욱 정의롭고 포용적으로 나아간다. 예술은 바로 이 지점을 보여준다. 예술은 감정을 자극하여 인간적 인정을 확산시키고, 동시에 사회적 구조 속에서 인정받지 못한 존재를 드러내어 제도의 변화를 요구한다.

결국 '인정'이라는 단어의 두 얼굴은 우연한 언어의 다의성이 아니라, 인간 사회가 살아가는 이중적 조건을 드러낸다. 우리는 타인과의 정을 통해 인간다움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제도적 승인 속에서 권리와 존엄을 보장받아야 한다. 따뜻함과 공정함이 함께 작동할 때, 인간 사회는 비로소 완성된다. 인간다운 삶은 바로 이 두 인정 속에서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