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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칸딘스키 - 추상의 음악

by Polymathmind 2025. 9. 20.

현실을 넘어선 시각 

칸딘스키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법학과 경제학을 공부했지만, 예술이 가진 내적 울림에 매혹되어 화가의 길을 택했다. 1910년 무렵, 그는 전통적 구상 회화의 한계를 넘어, 세계 최초의 추상화를 시도했다. 이는 단순한 형식의 변화가 아니라, 예술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사건이었다. 이전까지 예술은 ‘현실의 모방’에 가까웠지만, 칸딘스키에게 예술은 대상을 재현하지 않고도 인간의 영혼과 감정을 울릴 수 있는 언어였다. 따라서 추상미술은 단순한 기교가 아니라, 예술의 본질을 묻는 철학적 혁신이었다.

음악에서 찾은 예술의 길

칸딘스키는 예술이 ‘내적 필연성(inner necessity)’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색과 선은 단순히 눈을 즐겁게 하는 장치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직접 울리는 소리와 같았다. 그는 음악이 구체적인 사물을 묘사하지 않고도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 그래서 자신의 작품에 '즉흥(Improvisation), 구성(Composition)' 같은 음악적 제목을 붙였다. 이는 회화가 곧 시각적 음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캔버스는 음표 대신 색과 선으로 짜여진 교향곡이며, 관객은 눈으로 듣는 음악을 체험하게 된다. 이처럼 칸딘스키는 예술 간 경계를 허물고, 회화가 음악처럼 순수한 감정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아래 그림은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의 혼례합창곡에 감명 받아 그린 '즉흥 19'이다.

예술과 정신 

1911년, 칸딘스키는 '예술에 있어서의 정신적인 것'을 발표하며 예술 이론가로서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예술을 단순한 미적 즐거움이 아닌, 인간 정신과 영혼을 고양하는 도구로 보았다. 예술의 가치는 외형적 아름다움에 있지 않고, 보이지 않는 내적 울림을 전하는 힘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예술을 사회적 장식이 아니라, 인간 존재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하는 철학적 실천으로 격상시킨다. 나치의 탄압 속에서도 그는 예술이 인간 정신의 자유와 영혼의 해방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바우하우스에서의 교육 활동으로 이어져, 후대 예술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남겼다.

칸딘스키는 단순히 새로운 양식을 창안한 화가가 아니라, 예술의 본질을 바꾼 혁신가였다. 그는 색과 선을 음악처럼 해방시켜, 예술을 현실 재현의 도구에서 인간 정신의 울림으로 끌어올렸다. 그의 추상화는 보는 그림을 넘어, 인간 내면과 직접 대화하는 시각적 음악이다. 오늘날 칸딘스키의 작업은 우리에게 다시금 묻는다. 예술은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는가? 그리고 예술은 어떻게 인간의 정신을 해방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