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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도시 인문학 16 - 예술과 저항의 도시, 바르셀로나

by Polymathmind 2025. 9. 15.

예술과 건축, 도시의 얼굴을 새기다

바르셀로나의 거리를 걷는 것은 곧 예술사 속을 거니는 경험과 같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단연 안토니 가우디다. 그의 대표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1882년 착공 이후 지금까지도 미완의 상태인데, 이 ‘영원한 건설’은 오히려 예술이 단순히 완성품이 아니라 과정 속에서 의미를 갖는 것임을 상징한다. 가우디는 자연을 모방한 곡선과 빛, 그리고 기독교적 신앙심을 결합하여 건축을 일종의 살아 있는 유기체로 만들고자 했다. 까사 바트요와 까사 밀라는 그의 상상력이 어떻게 생활 공간까지 스며들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의 예술은 가우디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고딕 지구(바리 고틱)는 중세 카탈루냐 왕국의 흔적을 간직한 구역으로, 좁은 골목과 웅장한 성당들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시간의 통로가 된다. 또한 20세기 후반 이후 세워진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MACBA)이나 카탈루냐 국립미술관(MNAC)은 도시가 과거의 유산에 머무르지 않고, 현대 예술과도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더해 거리 곳곳의 그래피티나 공공 미술은 예술이 특정한 제도 안에 갇히지 않고 시민의 삶 속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음을 증언한다. 결국 바르셀로나는 예술이 도시의 얼굴을 새기고, 동시에 도시가 예술을 품어내는 거대한 무대라 할 수 있다.

정체성과 저항, 카탈루냐의 심장

바르셀로나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카탈루냐 정체성과 저항의 역사를 살펴야 한다. 이 도시는 오랫동안 스페인 정치의 격동 한가운데 있었으며, 특히 스페인 내전(1936~1939) 당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바르셀로나는 공화파 세력의 중심지였고, 프랑코의 군대와 맞서 싸우는 저항의 전선이었다. 전쟁은 패배로 끝났고,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진 프랑코 독재 정권은 카탈루냐 언어와 문화를 억압했다. 학교에서 카탈루냐어 사용이 금지되고, 공공연한 문화 활동이 제한되었다. 그러나 시민들은 비밀리에 언어를 지키고 문화를 이어가며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늘날 바르셀로나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탈루냐 독립 깃발(Estelada) 은 과거의 기억이 현재에도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2017년에는 카탈루냐 독립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다시 한번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 사건은 단순히 정치적 독립 여부를 넘어서, 한 도시와 공동체가 자신의 언어와 정체성을 지키려는 역사적 노력이 여전히 진행형임을 증명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바르셀로나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기억의 도시다. 거리의 벽화, 광장에서 열리는 집회, 사람들의 언어 사용 하나하나가 모두 과거의 저항과 현재의 정체성을 증언한다. 도시 인문학적으로 볼 때, 바르셀로나는 억압과 자유, 기억과 정체성이 맞부딪히는 현장이다.

현대적 활력, 열린 도시의 상징

바르셀로나의 매력은 과거에만 있지 않다. 이 도시는 현대적 활력을 통해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그 전환점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이었다. 이 올림픽은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도시 재생의 계기가 되었다. 바닷가 항만 지역은 재개발되어 시민들이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해변으로 바뀌었고, 이는 도시와 바다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했다. 바르셀로나는 다시금 ‘지중해 도시’라는 정체성을 회복한 것이다.

그러나 현대적 활력은 양면성을 지닌다. 바르셀로나는 유럽 최고의 관광 도시 중 하나로, 매년 수백만 명이 방문한다. 이는 경제적 이익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지역 주민들의 삶을 압박하는 관광 공해 문제를 낳았다. 집값 상승, 과잉 관광으로 인한 환경 파괴, 지역 공동체의 해체가 바로 그 결과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는 ‘글로벌 도시’라는 정체성이 가진 모순이며, 바르셀로나는 여전히 그 균형점을 찾고 있는 중이다.

또한 바르셀로나는 스포츠를 통해서도 세계적 상징성을 갖게 되었다. FC 바르셀로나는 단순한 축구 클럽이 아니라, 카탈루냐 공동체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담아낸 존재다. 그들의 슬로건 “Més que un club”(클럽 이상의 존재) 은 스포츠를 넘어 사회적·문화적 연대를 상징한다. 경기장에서 외쳐지는 함성은 단순한 승패를 넘어서, 공동체의 목소리이자 정체성의 선언이다.

바르셀로나는 예술, 저항, 활력이 교차하는 도시다. 가우디가 남긴 건축물과 거리 곳곳의 예술은 도시를 하나의 거대한 무대로 만들고, 스페인 내전과 독재 시기를 거치며 지켜낸 카탈루냐 정체성은 도시를 기억의 현장으로 만든다. 여기에 1992년 올림픽 이후의 도시 재생, 관광과 스포츠 문화는 바르셀로나를 현대적 활력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결국 바르셀로나는 단순히 아름다운 관광지가 아니라, 인간의 창조성과 자유, 그리고 정체성을 향한 끝없는 투쟁이 교차하는 인문학적 무대다. 이 도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서로 대화하는 살아 있는 공간이며, 그래서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바르셀로나를 찾아와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