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8월 마지막 주에 대전예술의전당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을 연출했다. 늘 작품을 손에서 내려놓은 순간까지 관객의 반응과 생각을 신경쓰게 된다. 하지만 손에서 벗어나는 순간(공연 시작 종이 울릴 때)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더 이상 내가 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럴까? 나는 나의 작품을 편히 관객석에서 본 적이 거의 없다. 무대 뒤에 있거나, 대기실에서 작은 화면으로 무대를 바라본다. 문득 질문 생겼다. 내가 주는 공감과 동감은 무엇일까? 그리고 관객이 느끼는 공감과 동감은 무엇일까?
공감과 동감
공감의 정의는 타인의 감정을 자신의 내면에서 이해하고 체험하는 것이고, 동감의 정의는 상대방의 의견이나 감정에 마음이 같다고 느끼거나 동의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공감은 감정을 함께 느끼는 능력이고, 동감은 생각이나 입장을 함께하는 능력이라 보면 된다. 즉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두 방식인 것이다.
또 다른 질문이다. 우리는 공감을 해야 할까? 동감을 해야 할까? 쇼펜하우어는 인간이 타인의 고통을 인식하는 방식으로 공감을 강조했다. 그는 윤리의 근본을 '타인의 고통(감정)에 대한 공감적 직관'에서 찾는다. 에디트 슈타인 역시, 공감은 '타인의 경험을 나의 경험으로 재구성하는 의식의 작용'이라 했다. 즉 감정의 이해를 넘어 인간의 도덕적 선택과 행동을 가능하게 한다. 이 말은 함께 울어주고 기뻐해주는 것을 선택하며 그 행위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동감은? 타인을 이해하고 인지, 또는 사고와 판단의 영역이다. 즉 동감은 감정을 공유하지 않아도 사회적 관계 유지가 가능하다. 아주 최소한의 이해와 조화를 가능하게 한다.
예술에서의 공감과 동감
공감은 관객이 작품 속 인물이나 장면의 감정을 자신의 내면에서 체험하는 능력이다. 철학자 아서 쇼펜하우어는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함께 느끼는 능력이 인간의 도덕적 삶을 가능하게 한다고 보았다. 예술은 이러한 공감적 체험을 직접 제공한다.
예를 들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서 라스콜니코프의 갈등과 죄책감을 읽는 순간, 독자는 단순히 사건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심리적 고통을 자신의 감정처럼 체험한다. 마찬가지로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에서 미미와 마르첼로의 사랑과 비극을 관객이 눈물과 숨결로 함께 느끼는 순간, 공감은 감정적 연결을 넘어 행동적 연대로 이어질 가능성까지 갖는다.
현대 심리학자 데이비드 메이어는 공감을 “타인의 정서 상태를 인식하고, 자신 안에서 재현하는 능력”으로 정의하며, 공감이 단순한 이해를 넘어 윤리적·사회적 행동의 토대가 됨을 강조한다.
반면 동감은 관객이 작품 속 상황이나 인물의 감정을 이해하고 수긍하지만, 자신의 내면에서 감정을 체험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타자의 고통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 인간 윤리의 출발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인식’ 단계가 바로 동감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같은 '죄와 벌'을 읽으면서 “라스콜니코프가 그렇게 느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는 수준이 동감이다. 음악 감상에서도 곡의 구조와 작곡가의 의도를 이해하지만 감정적으로 몰입하지 않는 경우, 이는 동감적 이해에 해당한다. 동감은 작품과 관객을 연결하지만, 감정적 변화나 행동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사회적 연결과 변화를 만드는 힘
공감은 감정을 느끼는 사회적 힘을 가졌고, 동감은 타인을 이해하고 사회적 조화를 유지하는 힘을 가졌다. 이 둘은 사회적 연대와 공동체를 강화시키며, 감수성을 높여 사회적 책임 의식을 높이기도 한다. 예술의 다양성을 통해 문화, 역사, 가치관의 편견과 차별을 줄이기도하며, 다양한 주제를 통해 사회적 행동을 유발하기도하며 정책적인 변화도 촉진한다.
오늘날 디지털 매체와 SNS의 발달로 정보는 넘쳐나지만, 감정적 체험과 깊은 공감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예술은 이러한 공감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다. 공감적 예술 경험은 타인의 고통과 기쁨을 체험하게 하며, 동감적 이해는 사회적 조화와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예술은 단순한 감상 경험을 넘어 사회적 연결과 윤리적 행동을 촉진하는 매개체이다. 공감과 동감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는 서로의 삶과 감정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회이며, 이는 곧 인간다움과 공동체적 삶의 회복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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