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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추석과 추수감사절 - 감사와 자연의 순환

by Polymathmind 2025. 10. 7.

다시 경험할 수 없는 긴 추석 연휴가 지나간다. 연휴의 길이를 알고 나서, 사람들은 미리 계획을 세운다. 늘 깨지는 신기록이지만 올 추석에 해외 여행 인구는 신기록 갱신한다. 연휴의 한창을 즐기며 문득 질문이 생겼다. 동서양의 추석 혹은 추수감사절은 어떤 의미이고 어떤 과정을 통해 이 절기를 만들었을까? 우리는 그 근본적인 의미를 알고 지날까? 하는 질문이다. 

자연의 질서

계절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다. 지구가 23.5도 기울어진 상태로 태양 주위를 도는 것에서 비롯된다. 즉 태양의 고도와 빛의 각도에 따라 계절은 결정된다. 인간은 늘 하늘을 보며 살았다. 하늘의 변화를 관찰하고 기록하며 절기라는 것을 만들었다. 동양은 달의 주기로, 서양은 태양의 주기로 관찰한다. 인류는 그 질서를 읽어내어 하늘이 허락한 리듬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농사와 삶을 맞추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봄은 탄생의 시기, 여름은 성장의 시기, 가을은 결실의 시기 그리고 겨울은 휴식의 시기를 찾아낸다.
그리하여 가을은 수확하며 자연과 신에게 돌려드리는 감사함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동양에서는 추석으로, 서양에서는 추수감사절로 이어진 것이다.

동양의 추석 - 조상과 자연의 순환

한국의 추석은 ‘한가위’, 곧 ‘가을의 한가운데 날’이다. 보름달이 가장 둥글게 빛나는 밤, 사람들은 조상의 묘를 찾아 성묘하고, 햇곡식과 햇과일로 차례를 올린다. 그 행위는 단순한 제사가 아니라, 조상과 후손, 자연과 인간이 이어지는 순환의 의식이다. 

달빛 아래에서 송편을 빚고, 음식을 나누는 순간, 가족은 모두 모여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관계를 복원한다. 추석의 ‘감사’는 위로 향한 기도이자 옆으로 뻗은 관계다. 자연은 인간의 노동을 받아들였고, 인간은 그 결실을 다시 자연과 조상에게 돌려준다. 그렇게 추석은 조화와 균형의 철학을 담은, 가장 동양적인 명절로 남아 있다.

서양의 추수감사절 - 신의 은혜에 대한 감사

서양의 추수감사절은 1621년, 신대륙에 도착한 청교도들이 첫 수확을 마치고 신의 은혜와 원주민의 도움에 대한 감사로 식사를 나눈 데서 비롯되었다. 이 명절의 중심에는 '자연의 순환’이 아니라 ‘신의 섭리’가 놓여 있다. 인간은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신의 피조물이며 풍요는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은총의 증거로 여겨졌다.

세월이 흐르며 종교적 의미는 옅어졌다. '블랙 프라이데이'로 이어지는 소비 축제로 둔갑된다. 하지만 감사절의 본질은 여전히 감사의 관계있다. 칠면조와 파이로 차려진 식탁은 풍요의 상징이 되었고, 역시 모두 모인 가족은 신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감사하며 한 해를 마무리한다. 그 속에는 서양적 신앙과 인간 중심의 철학이 조화롭게 공존한다.

동서양 - 관계를 회복하는 시간

동양의 추석이 ‘자연과 조상의 조화’를 말한다면, 서양의 추수감사절은 ‘신의 은혜와 인간의 노력’을 노래한다. 그러나 두 명절의 근원은 같다. 감사는 곧 관계의 회복이다. 자연과 인간, 신과 인간, 가족과 사회의 관계가 단절되지 않기 위해 인간은 매년 이 시기에 마음을 낮추고 감사의 말을 되새긴다. 

감사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세상과 다시 연결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추석과 추수감사절은 그 의지가 집단적으로 드러나는 문화적 장치이며, 동서양 모두 그 안에서 인간의 존재를 다시 확인한다. 그러니 모여서 싸우지 말자. 관계를 회복하는 시간이지 관계를 무너뜨리는 시간이 아니란 말이다. 

달빛과 불빛 사이에서

동양의 달빛과 서양의 촛불은 서로 다른 빛을 낸다. 그러나 그 빛 아래에서 사람들은 같은 마음을 품는다. “이 한 해를 잘 살아냈다”는 안도감, “함께 있어서 감사하다”는 따뜻한 믿음의 표현이다. 그리고 삶은 혼자 이루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는 철학도 있다. 

추석과 추수감사절은 과학이 만든 계절 위에 피어난 감정의 축제다. 하늘의 질서가 인간 삶의 리듬을 만들고, 그 리듬 속에서 인간은 감사라는 이름으로 자연과, 신과, 그리고 서로를 다시 마주한다. 이것이 추석과 추수감사절의 본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