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학

우리가 잃어버린 것 10 - 시간의 끝

by Polymathmind 2025. 10. 6.

 며칠 전, 영화 '맨 프롬 어스'의 에세이를 쓰면서 이 질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시간은 누가 정의했는가?'였다. 주인공 존 올드맨(크로마뇽 인)은 14,000년의 시간을 살아왔다. 그의 시간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인간이 정의 내렸다. 시간이란 자연의 반복으로 인간이 그 의미를 정의하며 과학으로 정식화한 것이다.

시간을 처음 정의한 것은 고대인들이었다. 낮과 밤에 보이는 태양, 달,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주기적 질서를 발견한다. 그것을 기록하면서 측정하고, 오랜 시간을 두고 변화를 찾아낸다. 해시계, 물시계는 자연의 반복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최초의 장치였다.          즉, 시간 정의의 시작은 이미 정해진 자연의 반복을 인간이 받아 적은 것이었다. 

플라톤은 시간을 '영원의 움직이는 형상'이라 정의했다. 변하지 않는 영원의 그림자가 시간 속에 있다고 생각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은 인간의 마음 구조로 본다. 인간 의식이 만들어내는 현상이라는 말이다. 과거는 기억, 미래는 기대, 현재는 경험의 개념을 생각했다. 칸트는 더 나아가 시간과 공간은 인간이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사용하는 틀이다라고 했다. 아리스텔레스는 조금 다르게 정의한다. 변화와 운동이 없다면 시간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봤다. 쉽게 말하자면 세상의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씨앗이 나무가 되고, 낮이 밤이 되고, 아이가 어른으로 자라는 것처럼 뭔가 변화하는 운동이 있다. 이것을 숫자로 세고 구분한 것이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과학은 시간을 수학적으로 정의하려 한다. 뉴턴은 시간은 사건과 무관하게 동일하게 흐르는 절대적 실체라고 했다. 즉 변화와 무관하게 시간은 스스로 존재하며 어디서나 똑같이 흐는다고 생각했다. 반면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을 하나로 합쳐 '시공간'이라 정의하며 중력과 속도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절대적이지 않으며 상대적으로 다르게 측정이 된다고 한다. 과학은 철학과 달리 시간을 측정 가능한 물리적 차원으로 접근한다. 

시간은 시대마다, 학문마다, 다르게 정의된다. 하지만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라고 하며 피할 수 없다고 했다. 과학에서도 에너지 소모를 설명하며 우주의 유한성을 시사한다. 주어진 시간의 길고 짧음은 다르겠지만, 우리는 모두 시간 속에 던져졌다. 수없이 선택해야 하는 것은 숙명이다. 그래서 우리의 시간은 가치가 있다. 이 모든 순간이 특별하며 단 한 번밖에 없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시간의 유한성은 결핍이 아니라, 인간을 완성시키는 조건이다. 삶이 빛날 것이다. 

이 우주에 나는 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