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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인문학-다시 돌아가자, 르네상스

by Polymathmind 2025. 1. 3.

인문학이 왜 필요한가?

대학교 4학년을 마치고 독일과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14년을 공부하고 일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이질감은 나는 질문이 없다였다.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모두 훌륭하다. 그리고 대단한 스펙을 가지고 있다. 나도 그들 중에 하나였다. 독일과 미국에서 유수의 대학들을 다니며 더 큰 세상과 큰 사람들을 만났다. 하지만 나는 질문이 없었다. 수업 내용이 쉬워서가 아니었다. 질문을 할 줄 몰라서였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재학 중이던 학교 타 과 교수님이 노벨상을 받았다. 그 교수님의 축하 강연을 한다고 해서 찾아갔다. 과학분야여서 다 못알아들었지만, 그분이 계속 강조했던 것은 사람, 인간이었다. 인간을 위한, 사람을 위한 연구가 노벨상까지 받게 되었다 했다. 그분의 나이는 이미 70대였다. 평생 연구의 목적이 사람이었다는 말이 나의 뇌리를 때렸다. 그때부터 사람을 위한 것이 무엇인가 궁금해졌고, 막연하게 인터넷을 뒤지다가 대한민국의 인문학 열풍을 접하게 된다. 

인문학? 이게 뭐지? 시간이 흘러서 답을 얻은 것이 아니었다. 돌아보니 내가 계속 질문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나는 질문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대한민국의 교육은 대답을 잘 하는 사람만 인정받는 곳이다. 질문하는 교육에 실패했다. 미친 듯이 공부하고 스펙을 쌓는 일에 집중하니 질문보다는 해답을 찾는 것에 전문가가 되었다. 그렇게 외치던 '창의력'은 원래부터 대한민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질문을 하면 뭉게 버리는 교육과 주위의 시선, 허무맹랑하다고 우리의 상상력을 막아버리는 부모들, 우리는 뛰어난 능력을 가졌음에도 그것을 모르고 죽는 건 아닌가 싶다. 

그토록 뜨거웠던 인문학 열풍은 이제 식었다. 왜? 우리는 또 듣기만 했다. 질문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종합대학교에 인문대가 비인기학과가 되면서 통폐합되고, 예산이 많이 투입되는 이과계열의 과들이 신설된다. 그 후로 몇 년 후 사람들은 인문학에 열광하기 시작한다. 아이러니하다. 철학, 문학 등의 인간을 탐구하는 학문이 사라지니 그것을 갈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은 이미 역사에서 반복되고 있었다. 나는 그 반복의 역사를 나누고자 한다.

인문학의 시작은 어디부터인가?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학문(Studia humanitatis)' 에서 출발한다. 모든 학문은 인간이 이룩한 문명과 더불어 발달해 왔다. 발달이 될수록 인간에 대한 질문과 연구는 깊어졌다. 하지만 살다 보니 그리고 학문이 깊어지다 보면 대중들과 멀어지게 마련이다. 지금하고 다를 바가 없다. 

플라톤

그렇다면 역사에서 기록하는 인문학의 시작은 어디일까? 기원전 5세기 철학자 플라톤이 시작한 '플라톤 아카데미' 이다. 이곳에서는 아테네 리더들에게 '파이데이아 - 인간됨의 본질'을 가르쳤다. 그들의 과목은 수사학, 문법, 수학, 음악, 철학, 지리학, 자연의 역사, 체육이었다. 이것을 통해 인간됨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고, '아레테 Arete - 탁월함'의 삶을 사는 것이 그들의 목표 었다. 그리스-로마 시대를 거치면 인문학은 빛을 잃어간다. 하지만 또다시 로마의 법률가, 정치가, 사상가였던 '키케로'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인문학 - Humanitas'을 단어로 만들어내며 로마사회의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제시한다. 그리스어로 '아레테 - 탁월함'에서 라틴어인 '비르투스 - 용기가 추가된 탁월함'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키케로는 인문학의 목적을 이렇게 말한다

인문학(Studia)는 젊은 사람들의 마음을 바르게 지켜주고, 나이 든 사람들의 마음을 행복으로 안내합니다. 또한 풍요로운 삶을 가져다줄 뿐 아니라, 우리가 역경에 처해 있을 때, 마음의 안식과 평화를 줍니다.

다시 암흑시대(중세시대)로... 

중세시대로 넘어가면서 인문학은 잊힌다. 이른바 '암흑시대-중세시대'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성찰은 개인의 종교적 책임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이유는 죽음이었다.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은 인간의 연약함과 나약함을 여실히 드러냈고, 아무도 우리를 구원해 줄 왕도 군주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 앞에서 인간은 신을 찾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인간의 탐구는 묻히게 된다. 

이때 이탈리아 문학가 '페트라르카' 와 '보카치오'의 등장으로 어두웠던 인문학에 한 줄기 빛이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요즘 쓰는 인문학의 개념은 바로 '르네상스'시대의 개념이라 할 수 있다.

페트라르카가 말년에 쓴 편지다.

내 시대를 잊기 위해 끊임없이 나 자신을 다른 시대의 분위기 속으로 몰아넣었으며, 그 결과 역사 속에서 나는 기쁨을 느꼈다. 

다시 고대 그리스정신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중세 말기 등장한 '스콜라철학'의 자폐적이고 배타적인 신학 연구에 정면으로 도전하게 된다. 중세시대는 종교 과잉시대, 신의 학문인 신학만이 우리를 바라보는 잣대라며 주장한 암흑의 시대였다. 과연 중세시대를 마감할 수 있을까?

14세기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를 시작으로 우리까지의 인문학을 한번 생각하고 질문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