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본질은 무엇일까?
인문학의 급격한 쇠퇴현상에서 다시 폭발적으로 관심이 고조되기도 하면서 과연 인문학의 기본적 가치와 목표는 무엇일까? 인문학은 그 시대의 경직성에 저항하고 인간에 대한 이해 혹은 반성을 시도했다. 이해와 반성을 하면 '인간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다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본질적인 '인간에 대한 관심'은 무엇일까?
르네상스의 인문학자들은 역사, 도덕, 철학, 문학, 수사학, 시를 공부해야 리더가 된다고 했다. 예전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인문학을 변형시킨 것이다. 의학, 천문학, 논리학, 문법, 법률의 과목에서 도덕, 철학, 수사학, 시학을 추가한다. 이 과목의 변화가 18세기까지 영국과 프랑스 대학에서 인문학 교과과정으로 정착된다. 즉 현재 우리가 알고 있던 인문학 = 문사철의 공식은 18세기 이후의 발전이다. 단순히 문과 중 인문=문사철이 아니라 사회와 조직의 리더를 기르기 위한 중요한 과목이었다.
로마시대 | 르네상스 | 근대/현대 | 추구하는 정신 |
역사로부터 얻는 지혜 | 역사 | 역사 | 진 |
도덕적 판단력 | 도덕 철학 | 철학 | 선 |
글,말로 대중 설득력 | 문법,수사학,시 | 문학 | 미 |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인문학의 본질적인 기본 정신은 '탁월함의 추구를 통해 진선미의 삶을 사는 것'이다.
키케로 - 우리 사회는 어떻게 지속 가능한가?
키케로는 말년에 '의무론'을 쓰면서 인간이 지켜야 할 사회적 의무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 그는 '인간이 도덕적으로 사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당시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하면서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인쇄한 책이 바로 '의무론'이다. 그만큼 유럽에서는 중요한 질문이었다.
참된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이 무엇을 절제할 것인가? 인간과 사물의 본질을 숙고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며, 모르는 것을 아는 체하며 무조건 동의하지 않는 것이 인문학적 성찰의 첫출발이라고 한다. 남의 것을 탐내지 않고 자기 것에 만족하는 것, 약속(법)은 반드시 지키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길이라 한다. 사실 스승이었던 플라톤의 '국가'에서의 철학과 정반대이기도 하다.
용기를 가진 사람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키케로는 용기를 가진 사람을 이렇게 정의한다. '계획과 이성에서 이탈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는 절제 혹은 적절함이 도덕적 삶의 근본이라고 한다. 우리가 자연질서에 부합하려면 적절함 혹은 절제를 지켜야 한다고 한다.
두 가지 질문을 통해 지속 가능한 사회의 요건은 지혜, 정의, 용기, 적절함(절제)라고 한다.
호메로스 -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2750년 전 그리스의 서사시인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질문한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오디세이아'에서 그 본질적인 고뇌를 우리에게 서사해주고 있다. 전쟁을 통해 인간의 악랄한 습성 속에서 펼쳐지는 리더를 향한 그리고 우리 자신을 향한 서사이다. 그가 트로이전쟁을 끝마치고 돌아오며 고향에 가서 더 큰 시련이 있을 거라는 예언을 듣게 된다. 그는 의연한 자세를 보인다. 돌아오는 길에 사이렌의 유혹을 받으며, 부하들의 귀를 막게 하고 자신을 돛대에 꽁꽁 묶도록 명령합니다. 애원하거나 명령을 하면 더 많은 밧줄로 묶으라고 한다. 리더는 스스로를 고통과 고뇌에 옭아맬 줄 알아야 하고, 언제나 만약의 사태에 대비를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것이 호메로스가 첫 번째 던질 질문의 답이다.
나는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존재
내가 누구인지를 알았다면, 내가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존재임을 알았다면, 자신의 운명을 피하지 말고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오는가? 바로 나의 운명을 사랑하는 것에서 출발이다. 나이가 들어 몸이 쇠약해진 오디세우스가 문득 바다를 바라보는 장면이 그려진다. 그리고 그는 다시 바다로 떠날 결심을 한다. 다시 떠나는 그는 목적지를 찾았을까? 아니다. 그는 목적지를 정하고 다시 떠난 것이 아니라 그저 멈춰있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고통을 견뎌내는 운명을 가진 존재는 머물러 있을 수 없고, 운명을 사랑하는 사람의 운명은 그 운명을 사랑할 기회를 찾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시 일어나 나아갔다.
스토아 철학자였으며 로마의 위대한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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