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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과학과 음악 시리즈 3 - 아이작 뉴턴 일생과 과학관

by Polymathmind 2025. 1. 3.

뉴턴의 일생

영국의 수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이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뉴턴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하였다. 당시 대학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었지만, 현대 철학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1665년 영국에서는 흑사병이 대대적으로 유행하게 되어, 이 기간 동안 케임브리지 대학교는 폐교하였다. 이 시기 뉴턴은 2년 동안 고향에 내려가 있었다. 그의 위대한 업적의 대부분은 이 시기, 즉 1665~1666년에 싹튼 것으로, 유명한 사과의 일화도 이 무렵의 일이다. 2년간의 한적한 시골살이는 과학과 철학에 대한 사색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며, 이 시기에 수학, 광학, 천문학, 물리학의 중요한 발견들을 해냈다. 그래서 뉴턴 스스로도 2년간의 휴학 기간에 대해 "발견에 있어서 전성기를 이루었다"고 할수 있다. 흑사병이 지나고 학교가 문을 열자 뉴턴은 어마어마한 업적을 이뤄낸다. 왕립학회 회원으로 뽑히기도 한다.

아이작 뉴턴

그는 국회의원과 왕립 조폐국장 등 정치 활동도 병행하였으며, 런던 왕립학회 의장으로 취임한다. 뉴턴은 앤 여왕으로부터 기사작위 Knight Bachelor를 받기도 한다. 그는 1727년 3월 31일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잠들어 있다. 

그의 묘비문은 다음과 같다. 

H. S. E. ISAACUS NEWTON Eques Auratus, / Qui, animi vi prope divina, / Planetarum Motus, Figuras, / Cometarum semitas, Oceanique Aestus. Sua Mathesi facem praeferente / Primus demonstravit: / Radiorum Lucis dissimilitudines, / Colorumque inde nascentium proprietates, / Quas nemo antea vel suspicatus erat, pervestigavit. / Naturae, Antiquitatis, S. Scripturae, / Sedulus, sagax, fidus Interpres / Dei O. M. Majestatem Philosophia asseruit, / Evangelij Simplicitatem Moribus expressit. / Sibi gratulentur Mortales, / Tale tantumque exstitisse / HUMANI GENERIS DECUS. / NAT. XXV DEC. A.D. MDCXLII. OBIIT. XX. MAR. MDCCXXVI  

번역 - 이곳에 아이작 뉴턴 경이 묻혀있나니, 신성에 필적하는 지성의 힘으로, 행성의 운행과 형상, 혜성의 경로, 대양의 조석을 자신의 수학으로 불 밝혀서 처음으로 설명하였다. 여러 광선의 차이점과 여기서 생겨나는 여러 색상의, 이전에는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성질을 탐구하였다. 자연과 고대와 성서의 면밀하고 예리하며 충실한 통역자인 그는, 지극히 선하시고 위대하신 신의 위엄을 철학으로 확립하고,복음의 간결함을 그의 방식으로 표현하였다. 인간들이여 이토록 위대한 인류의 영광이 있었음을 기뻐하여라. 1642년 12월 25일 출생. 1726년 3월 20일 사망

뉴턴의 과학관

뉴턴의 과학적 업적을 나열하는 것은 크게 의미없는 일이다. 어디서나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줄테니까. 지금 우리는 그의 음악적 과학관을 보고자 한다. 뉴턴이 누구보다도 신비주의에 매몰된 인물이었다는 것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연금술을 하기도 했다. 그를 사로잡았던 자연의 수학적 질서에 대한 맹목적인 확신은 신비주의자들의 공통된 세계관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이해되었다. 뉴턴은 근본적인 역학적 법칙을 수립함으로써 역학과 천문학의 혁명을 일으킨다. 케플러의 법칙을 만들어 내는 힘으로 태양으로부터 행성들에 미치는 원격 작용인 만유인력을 상정한다. 당시 신비주의를 말도 안되는 과학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은 데카르트였다. 뉴턴은 데카르트와 많은 의견 대립을 했다. 즉 데카르트의 기계적 철학의 핵심은 모든 자연 현상은 미시적인 기계 메커니즘에 의해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만유인력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뉴턴은 광학을 설명하면서 자연 속에 내재하는 음악적 질서를 표현한다. 자연 속에서 7개의 음이 존재하듯이 색도 7개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진동수에 따라 다양한 음고가 발생하듯 빛 또한 파동에 따라 다양한 색이 나오는게 자연의 이치라고 했다. 

뉴턴에게 있어서 빛이나 중력은 자연에 내재하는 수학적 질서, 더 나아가서 음악적 질서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것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음악은 우주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적 질서였고 그것은 수학적 법칙을 따르며 새로운 우주 통합의 원리를 상상하였다. 그런 점에서 뉴턴은 천체의 음악을 따르면서도 파괴하였고 음악을 탈마법화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그러면서도 음악의 마법을 그의 우주관에서 유지하고자 한 과도기적 인식도 발견할 수 있다. 케플러가 그랬듯이 뉴턴도 근대과학을 추구하면서도 전근대적인 속성을 가졌다.

그는 자연에 대한 끊임없는 궁금증과 호기심을 가졌다. 마치 레오나르도 다 빈치처럼 질문을 던진다.

가장 좋은 답은, 가장 좋은 질문이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