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는 누구인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 중 이름을 대라 하면 아마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사람이 바로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일 것이다. 르네상스 시절의 양대 산맥이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함께 후대에 가장 영향력을 많이 끼친 사람이다. 그도 폴리매스이다. 조각가, 화가, 건축가, 시인이었다. 어린 나이에 메디치 가문(로렌초 데 메디치)에서 후원을 받으며 미술 공부를 하고 이미 천재라고 불렸다. 그는 로렌초 데 메디치의 아들들과 식사를 하고 함께 철학과 라틴어, 문학 등 수준 높은 인문학을 배웠다. 그가 단테의 '신곡'을 좋아하게 된 것도 이때 일 듯하다. 그래서 그의 작품 전반에 걸쳐 '신곡'의 고통과 순교, 그리고 구원의 주제가 늘 나타난다.
미켈란젤로의 수없이 많은 작품을 작업하면서 그가 자신에게 수없이 반복했을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어떤 아름다움의 흔적을 남길 것인가?'
다비드 조각상
조각, 회화, 건축이라는 3대 조형예술을 말로 표현을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 위대하고도 위대한 예술가이다. 그는 89년의 긴 생애를 통해 예술의 목표는 인간에 대한 고뇌를 작품 속에 담아내려 했다. 24세 때 조각한 '피에타'는 아름다움을 죽음으로, 죽음을 아름다움으로 덮으려고 하는 그의 고뇌가 깊이 담긴 역작이다. 그 조각상에는 원근법과 사실적인 묘사, 입체감, 공간감 등 회화에서만 볼 수 있었던 기법들이 모두 담겨있다.
그 후, 미켈란젤로는 '다비드'를 조각한다. 당시 피렌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창고에 거대한 대리석이 있었는데, 수십 년 동안 성당에 처박혀 있었다. 여러 조각가들이 관심은 가졌으나 실수라도 해서 이 대리석을 깨트리게 된다면 예술가의 생명이 끝나기 때문에 아무도 건들지 못했다. 이때 미켈란젤로가 등장한다. 그는 거칠고 거대한 대리석 안에 다비드의 숨결을 상상했을 것이다. 그 상상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다비드를 꺼냈다. 어느 누구도 가능성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다비드의 숨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전진한다. 해부를 통해 근육과 골격을 이해했고, 대리석 원산지를 찾아가기도 한다. 이 작품을 보고 조르조 바사리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를 본 사람은 다른 조각가의 작품은 볼 필요가 없다. 조각이라는 예술은 끝났다'라며 극찬하였다. 5.5m의 거대함과 50톤의 육중함은 날렵한 젊은 다윗의 모습으로 살아났다. '다비드'에서도 인체 비율을 미묘하게 조절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올려다보기 때문이었다. 마치 진흙으로 사람을 만들어 생명을 불어넣은 신처럼, 대리석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근육과 핏줄을 사실적으로 표현함으로 인간의 아름다움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최후의 심판
조각가였던 그는 30대 후반이 되어 처음 붓을 들었다. 교황 율리우스 2세가 로마 시스티나 예배당의 거대한 천장을 내주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천장 아래 있으면 인간의 작음과 나약함이 느껴지고 결국에는 겸손이 남는다. 동시대의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티치아노 등의 위대한 업적은 미켈란젤로라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가 죽은 후에도 선의의 경쟁은 계속된다. 카라바조, 엘 그레코 등은 미켈란젤로를 넘어서기 위해 발버둥 치다가 자신의 시대를 뛰어넘는 예술가가 되기도 한다.
미켈란젤로는 동시대와 나중 시대의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궁극의 아름다움과 탁월함을 지향했던 그는 많은 이들에게 풀 수 없는 질문과 같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아니 인간의 한계를 깨달았다. 클레멘스 7세의 주문으로 '최후의 심판'은 교황 바오로 3세 때 작품이 완성되었다. 교황 바오로 3세는 이 그림 앞에서 무릎을 꿇고 참회를 했다고 한다. 이 그림에서 미켈란젤로의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볼 수 있다. 그림 가장 중간을 정면으로 본다면 대각선 바로 옆에 선지자 바르톨로메오 손에 가죽만 남은 시신이 들려있다. 그 시신이 미켈란젤로 자신이다. 그는 죽음을 대면하는 유한한 존재임을 그리고 죽어서라도 신과 가장 가까이 있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최상의 극강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그도 결국 죽음 앞에서 무력한 존재임을 자각하고 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당신은 어디로 가는가? 결국 죽음인데 어떤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가?
호메로스에게서 '진'을 찾았고, 키케로에게서 '선'을 찾았으며, 미켈란젤로에게서 '미'를 찾았다.
참된 인간은 자기 존재에 대한 성찰이나 사회적 윤리에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인문학적 성찰의 완성은 '미' 바로 흔적에서 완성된다. 인간만이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다시 질문한다. '당신은 어떤 아름다움의 흔적을 남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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