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 사이
피렌체에 가면 반드시 가야하는 곳 중 하나가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이다. 들어서면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브루넬레스키의 돔을 만날 수 있다. 벽돌 400만 장을 쌓아올려 상상력을 현실로 끌어 온 역사적인 곳이다. 지상에서 100m, 돔 양쪽 지름은 약 45m로 서양 건축사에 길이 빛나는 건물이다. 내벽과 외벽으로 어긋나게 설계하여 서로 당기고 밀치는 힘이 동일하게 맞닿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이곳은 2001년 개봉한 일본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일본배우 타케노우치 유타카와 중국계 여배우 진혜림이 주연한 영화다. 남녀의 이별 후 8년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원작은 2명의 공동집필자가 썼다. 에쿠니 가오리(여)는 여자 입장에서 소설을 쓰고, 츠지 히나토리(남)는 남자 입장에서 소설을 썼다.
피렌체와 밀라노의 아름다운 모습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두 사람의 미묘하고 세밀한 그리고 절제된 기류들은 이 영화의 묘미이기도 하다. 주인공인 준세이와 아오이가 피렌체에서 다시 만나는 곳은 '선한 자의 휴식처'라는 세계 최초의 고아원이 있던 곳이다. 저 멀리 브루넬레스키가 만든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의 돔과 메디치 가문의 기마상도 함께 카메라에 담는다. 영화에서 묘사하는 두 남녀 주인공의 캐릭터는 '열정'은 남자주인공 준세이를 '냉정'은 여자주인공 아오이로 잡는다. 영화는 두 도시를 '냉정' 과 '열정'으로 극명하게 나눈다. 준세이 살던 도시 피렌체는 '열정'으로 아오이가 살던 도시 '밀라노'는 '냉정'으로 표현한다. 열정의 도시 피렌체는 아르노 강을 중심으로 천재들의 영감과 분주한 모습으로 표현되고, 냉정의 도시 밀라노는 거대한 대리석이 가득찬 밀라노 대성당을 보여주며 차가운 인상을 표현한다. 이런 이분법적인 경계는 우리를 창조의 영감을 갖게한다. 냉정과 열정의 경계에서 아름다움이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창조적인 리더는 어떤 사람일까? 바로 냉정과 열정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사람이다. 불과 얼음을 모두 가지 사람. 대부분 한쪽으로 쏠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우리는 늘 그 경계에 서 있어야 한다. 경계에 서 있어야 양쪽을 모두 오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창조적인 리더가 될 수 있다.
냉정과 열정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사람이 창조적 영감을 가질 수 있다. 사람들은 그 리더에게 존경과 애정을 느끼게 된다. 감정과 생각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열정의 도시 '피렌체'
1504년 1월 25일 스무명 남짓의 사람들이 한 방에 모였다. 그 모임의 목적은 어떤 작품을 어느 장소에 전시할지를 선정하기 위해서였다. 시계 방향으로 얼굴을 보니,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보티첼리, 로셀리, 필리피노 리피, 피에로 디 코시모 등 이들의 작품을 모으면 미술관을 가득 채울 수 있겠다. 실제로 그 방에서 몇 미터 밖에 '우피치 미술관'이 있다. 어떤 작품이였냐면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였다.
피렌체는 그런 도시다. 짧은 시간에 이토록 많은 천재들을 배출한 곳. 이게 지금까지의 역사에서도 없는 일이다. 원래 피렌체는 그저그런 도시다. 화재와 홍수 그리고 주변에는 악독한 이웃들이 득실거렸다. 그런데, 르네상스는 피렌체를 택한다. 아테네는 지혜를 우러러보아 소크라테스를 얻었고, 로마는 힘을 우러러보아 제국을 얻었다. 그렇다면 피렌체는 무엇을 우러러보았길래 르네상스를 얻었을까?
엄지손톱만한 작고 둥근 것. 한쪽에는 세례자 요한이, 다른 한쪽에는 백합이 새겨져 있다. 바로 피렌체의 부와 과감한 실용주의를 담아낸 '플로린'이다. 세계 최초의 국제 통화(돈)이였다. 단테는 이것을 '저주받을 꽃'이라 부르기도 했다. 오죽하면 '신곡'에서 플로린을 가지고 대부업을 했던 사람들을 일곱번째 지옥에 쳐넣었다.
피렌체는 돈과 천재의 경계에서 탄생한 르네상스의 접점이었다. 피렌체는 상인과 은행가의 도시였다. 많은 사람들이 환전을 하고 대출 협상을 하며 살았다. 당시 여든 개 가까운 은행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 중에 가장 큰 은행은 메디치가의 은행이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을 파산시킨 곳이란 이야기도 된다. 메디치가의 악명은 은행이 커지면 커질수록 높아졌다. 그들은 한가지 선택을 한다. 아름다움(미)을 추구하는데 그것을 사적 욕망이 아닌 공적 욕망을 충족하고자 한다. 메디치가는 명성만을 얻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인문학을 이해했고 그것을 실천한다. 이에 많은 철학가, 예술가들은 돈 걱정없이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펼칠 수 있었다.
메디치 가문은 왜 그 많은 돈을 썼을까? 바로 '플로린'이다. 고대 그리스 사상들이 메디치가를 불편하게 한다. 플라톤이 고리대금업을 반대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명이 없는 돈이 새끼를 치게 해서는 안된다며 강하게 주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디치가는 새끼를 친 돈으로 재산을 불린다. 불편하기도 하고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때 교황청에서는 천국과 지옥 사이에 연옥을 만드는 신개념을 도입한다. 아름다운 성화와 교회를 짓는다면 지옥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며 면벌부를 판다. 메디치 가문은 소리를 치며 인문학 후원에 박차를 가한다.
그 시작이 천하고 천한 돈이였지만 그들의 목적은 피렌체의 아름다움은 공적 욕망으로 채웠고, 지옥에서 연옥까지만이라도 가고 싶은 추한 간절함이 피렌체를 지금도 먹여 살리고 있다. 냉정과 열정, 아름다움과 추함, 삶과 죽음 등 이분법적인 경계에서 메디치가는 어쨌든 아름다움을 남겼다. 그것이 천재들을 모이게하고 재능을 발휘하게한 르네상스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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