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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베르디,사랑과 희생, 동백꽃

by Polymathmind 2025. 4. 15.

주세페 베르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오페라 작곡가로 이탈리아 오페라를 이상적인 장르로 완성시킨 베르디는 오페라의 성악적인 아름다움을 남김없이 활용하며 극의 완성도를 완벽하게 표현한다. 그도 바그너의 영향을 받아 바그너의 관현악법을 사용하여 거대한 창작을 한다. 사실 당시엔 대본이 엉성함에도 불구하고 음악적인 완성도가 워낙 높아 자주 공연되고 사람들의 뇌리에 깊게 남는다. 지금도 세계 유수의 오페라 하우스에서 그의 작품은 빠지지 않고 올라간다. 베르디의 정보는 앞의 다른 작품에서 언급하였다. 

한국 초연 포스터

라 트라비아타

라 트라비아타는 오페라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작품 중 하나이다. 베르디가 작곡하고,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가 대본을 쓴 이 작품은 1853년에 초연된다. 제목인 'La Traviata'는 이탈리아어로 '길을 잘못 든 여자' 혹은 '타락한 여자'라는 뜻을 담고 있다. 배경은 파리 사교계의 실제 인물인 '마리 뒤플레시'의 이야기이다. 원작자인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자전적 소설이다. 뒤마 피스는 소설 '삼총사'의 작가였던 '알렉상드르 뒤마'의 아들이다. 뒤마 피스의 '피스'는 프랑스어로 '아들'이란 뜻이다. 뒤마 피스는 하층 계급 출신이었던 어머니에게서 난 사생아로 한동안 아들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는 실제로 '마리 뒤플레시'와 연인 관계였고, 그녀가 23살의 나이에 세상을 뜨자 깊은 상실감으로 이 작품을 쓴다. 사적인 고백 작품이었다. 

오페라에서는 '마리 뒤플레시'는 '비올레타'로, '뒤마 피스'는 '알프레도'로 설정되며 순수한 청년과 고급 창녀의 아픈 사랑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당시 기준으로는 현대적인 주제를 다룬다. 금기시되던 사교계의 여성과의 사랑과 희생은 초연의 실패를 가져다준다. 베르디는 고귀한 척하는 당신들이 외면했던 현실을 무대 위에서 보라고 하듯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음악적으로 격하게 변화를 준다. 비올레타는 순수 청년 알프레도의 사랑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애써 무시하려 하지만 멀리서 들리는 알프레도의 목소리에 감정이 요동친다. 비올레타의 죽기 전 마지막 솔로곡에서는 단조의 조성과 느린 템포 그리고 침묵의 여백을 주며 죽음을 맞이하는 비통함과 현실을 이길 수 없는 체념을 표현된다. 극구 둘의 사랑을 반대했던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은 뒤늦은 허락으로 둘 사이의 사랑을 더 아프게 만든다. 

'라 트라비아타'는 진정한 사랑이 사회적 위신과 가족의 체면과 충돌할 때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사랑은 순수하지만 현실 앞에서 얼마나 취약한 감정인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당시는 여성의 의미는 딸, 아내 그리고 어머니로서만 존중을 받았지만 비올레타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여성상이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여성을 더 큰 의미로 정의하고 남성 중심의 일방통행인 사랑을 여성 중심의 사랑으로도 인정하는 작품이다. 그저 아름답고 슬픈 러브스토리가 아니라 여성의 주체성과 사회적 억압 그리고 도덕적 위선을 되묻는 작품이다. 

동백꽃

원작에서 등장하는 여인은 동백꽃을 좋아해서 늘 동백꽃을 꽂고 다닌다. 그래서 그녀의 별명은 '동백꽃 여인'이었다. 작품에는 하얀 꽃은 평상시에 착용하며 생리 중에는 빨간 꽃을 착용했다고 한다. 그녀의 삶이 철저히 남성의 욕망에 맞춰 규칙화되고 조절된 삶임을 암시한다. 그녀는 진정한 사랑을 느껴가며 자신을 지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사회적 현실은 그녀를 파괴하고 모든 걸 혼자 책임져야 하는 고통으로 몰아간다. 그는 결국 죽음으로 진정한 사랑을 인정받고 그녀의 삶도 아름다움으로 다시 기억된다. 

1948년 1월 16일, 명동 시공관에서 한국 최초 오페라가 올라간다. 바로 '춘희'다. 원작의 제목인 '동백꽃 여인'을 한자로 풀어 '춘희'로 올라간다. 일본에서 '춘희'로 의역된 것이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단순히 원작 제목의 동백꽃을 의역한 것으로 보이지만, 필자가 이 작품을 연출하면서 동백꽃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더 깊은 뜻이 있었다. 동백꽃은 겨울에도 피는 꽃이다. 추운 바람과 눈을 맞으면서도 꽃을 피우기에 고통 속에서도 기품과 생명을 잃지 않는다. 비올레타의 삶도 그러했다. 고통 속에서 아름다움과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동백꽃의 꽃말은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혹은 '누구보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단다. 그녀의 직업상 거래로 보이지만 그녀는 진짜 사랑을 만나고 싶어 하는 간절함과 절실함이 있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동백꽃은 꽃잎이 하나씩 떨어지지 않고, 꽃 전체가 툭 통째로 떨어진다. 그래서 동백꽃은 피었을 때와 졌을 때도 그 아름다움을 유지한다. 이것은 비올레타의 운명과도 연결된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떠나는 결단과 죽음도 그녀의 아름다운 인생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베르디는 뒤마 피스의 이야기를 가져오면서 순수한 사랑의 위대함과 진심은 언젠가 통한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깨닫기를 음악의 움직임으로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