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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도시 인문학 3-로마, 정신

by Polymathmind 2025. 4. 12.

로마

도시는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다. 도시는 시대정신이 구체화된 풍경이며, 권력과 기억, 감정이 공존하는 무대다. 앞서 아테네가 사유의 목소리로 도시의 정신을 일깨웠다면, 로마는 그 목소리를 질서로 조율하며 제국의 몸체로 확장시켰다. 도시 국가 개념에서 일치된 국가의 개념으로 넘어가기 위해 '법과 실천'이라는 뼈대를 만든 곳이다.  

로마 도시의 구조는 단지 건축적 배치에 그치지 않는다. 정치, 사회, 문화적 질서가 균형 있게 구현해 낸다. 도시 하나하나가 제국의 축소판이자, 권력의 공간적 연출이었기 때문이다. 

로마제국의 도시들의 특징은 '그리드형' 격자 구조로 건설된다. '카르도'(남북방향 주도로)와 '데쿠마누스'(동서방향 횡도로)라는 두 축으로 만들어진다. 이 두 길이 교차하는 중심에는 '포룸'이라는 광장이 자리한다. 이런 계획적 배치는 단순한 기능적 목적을 넘어, 로마의 질서와 권위 그리고 문명의 통제의 힘을 상징한다. 공간에서의 규칙적인 배열은 공간 안의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통제의 힘을 준다. '포룸'이라는 광장은 각 도시의 심장 역할을 한다. 그곳에는 법정, 신전, 기념물, 상점들이 들어선다. 모든 정치, 경제, 종교, 사회 활동이 집중되며 로마 제국의 상징이 된다. '포룸' 약간 벗어나면 공공 건축물들이 거대한 모습으로 우리를 압도한다. 콜로세움 안에서는 수만 명의 사람들의 함성과 비명소리가 동시에 들리며 그 옆에는 '테르마이'라는 공중목욕탕이 있다. 그곳은 목욕뿐 아니라 운동, 사교, 독서 등 복합문화 공간으로 사용된다. 시원하게 목욕을 하고 나오면 그 앞으로 원형극장 매표소가 있다. 그리스 전통을 계승하고, 문화와 메시지를 결합한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다시 눈을 돌려보면 또 하나의 거대한 건물이 나오는 앞에 줄이 매우 길다. 오늘 전차경주 결승전이 있는 날이다. 오늘은 황제도 방문한다 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나 보다. 이 공공 건축물은 시민들의 오락뿐 아니라, 황제의 관대함과 더 큰 황제의 권력을 연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로마는 정복지 도시를 두 가지로 나눠 건설한다. 하나는 '콜로니아'와 또 하나는 '무니키피움'이다. '콜로니아'는 국가에서 로마 시민, 특히 은퇴 군인들을 보내 도시를 만든 것을 말한다. 이곳의 도시의 구조와 공공 건축물은 로마 본토와 유사하게 건설된다. 일종의 로마의 정착형 거점 도시로 제국 확장의 핵심 역할한 도시다. 독일의 쾰른이 그 대표적인 도시이다. 두 번째인 '무니키피움'은 로마로 편입된 도시로 보면 된다. 자치권이 부여되며 강제적 지배보다는 협력적 제도 통합을 위한 시스템이라 보면 된다. 이 두 가지의 시스템으로 다양한 민족과 지역을 하나의 제국으로 통합할 수 있었다. 

우리가 로마 도시의 시내를 다니다보면 도로는 규격에 맞게 건설돼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시의 확장성과 다른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가 직선으로 나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이 생각이 난다. 도로와 수도교(물을 연결하는 다리)는 도시를 네트워크화했고, 정교한 구조화를 통해 로마 제국을 완성한다. 주거지역도 계급의 차이가 확 느껴진다. 귀족의 저택은 넓은 마당과 커다란 대문이 특색이다. 중상층은 지금 보면 임대형 아파트 구조로 밀집 거주지이고, 화재에 취약해 보이기도 한다. 

로마 정신

로마의 중심에 자리 잡은 '포룸 로마눔'은 광장처럼 보이지만 그곳은 공화정의 이상, 황제의 권위, 시민의 열망이 교차하는 정치적 무대였다. '키케로'는 이곳에서 수사학적 전투를 벌였고, 그의 연설은 도시 광장을 '사유가 구현되는 장소'로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카이사르의 피가 흐른 자리이기도 했다. 그 암살은 도시 공간이 지닌 정치적 긴장의 농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로마의 위대함은 건축보다도 법의 제도화에 있다. 기원전 450년에 제정된 12표법은 '법은 공개되어야 한다'는 원칙 아래 모든 시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이념을 상징했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이런 고대 도시의 법을 '시선을 내면화한 권력'으로 해석하며, 로마적 질서의 핵심을 설명한다. 시민들은 더 이상 감시당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통제하게 되며, 도시의 질서는 감정이 아니라 규범으로 작동하게 된다. 

로마는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이행하면서 도시의 정신 또한 바뀌기 시작했다. '아우구스투스'는 “나는 벽돌의 도시를 대리석의 도시로 만들었다”라고 선언하며, 정치적 전환을 건축적 언어로 표현했다. 이는 도시가 권력의 도구가 되었음을 상징한다. 황제는 단지 통치자가 아니라 도시의 설계자이자 신화의 중심이 되었다. 도시는 더 이상 시민의 것이 아니라, 황제를 위한 기념비적 공간으로 재편되었다. 그러나 모든 질서에는 그늘이 있다. 로마의 도시 구조는 남성, 자유민, 귀족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었고, 여성, 노예, 이방인의 목소리는 건축물과 문헌에서 거의 배제되었다. 세네카는 “노예에게도 인간적인 대우를 하라”라고 했지만, 이는 도덕적 가르침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도시의 화려함은 다층적 침묵의 바닥 위에 세워져 있었다.

로마는 누구의 도시였을까? 겉으로는 시민의 도시였지만, 실상은 권력의 연출과 통제의 미학으로 작동했다. 도시의 질서는 위대했지만, 그 속의 인간은 종종 익명 속에 사라졌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공공 공간에서의 ‘말하기’와 ‘행동하기’를 자유의 핵심으로 보았지만, 로마의 도시에서는 이러한 자유가 점차 형식화되거나 침묵으로 대체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로마의 유산 속에서 산다. 우리는 로마로부터 많은 것을 계승했다. 그러나 로마는 우리에게 묻는다. 도시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도시는 위대한 질서를 만들 수도 있지만, 그 안에서 인간은 쉽게 침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