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키테라
1901년, 안티키테라 섬 앞바다에서 인양된 난파선의 유물 중 하나는 당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발견을 품고 있었다. 청동의 부식된 조각 속에 숨어 있던 것은, 수십 개의 정밀한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기계 장치. 훗날 ‘안티키테라 기계’라 불리게 된 이 장치는, 기원전 2세기경 고대 그리스에서 제작된 세계 최초의 천문 계산기로 밝혀졌다. 손잡이를 돌리면 앞면에서는 태양과 달의 위치, 달의 위상 변화가 계산되었고, 뒷면은 사로스 주기, 메톤 주기, 올림픽 주기까지 추산하는 복잡한 톱니 다이얼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 작은 장치는 단순한 관측 도구가 아닌, 하늘의 질서를 모방하고 예측하려는 고대인의 지적 도전이었다. 놀라운 점은 이러한 기술이 전자도 없이 완전히 기계적인 방식으로 구현되었다는 것이다. 기하학, 수학, 천문학, 정밀기계공학이 결합된 이 유물은, 고대 그리스 과학이 결코 미신과 구분되지 않는 고도로 세련된 지식 체계였음을 증명한다.
고대의 시간 철학
이 기계의 진정한 의미는 단순한 기술적 성취에 있지 않다. 안티키테라 기계는 고대인이 '시간'과 '우주'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보여주는 사유의 결정체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하늘의 운동을 혼돈이 아닌 질서로 보았고, 그 질서를 '코스모스'라 불렀다. 그들에게 시간은 직선적인 흐름이 아니라, 천체의 반복 속에 존재하는 순환하는 구조였다. 기계의 정밀한 계산은 자연의 움직임을 모방하고자 하는 욕망의 산물이다. 예측 가능한 세계,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하늘의 사건들 속에서 인간은 스스로의 운명을 비추어보았다. 그들은 시간 속에 단순히 살지 않았다. 시간의 패턴을 읽고, 시간의 질서를 삶의 질서로 삼았다. 이러한 세계관은 과학과 철학, 종교와 기술을 분리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사고하는 고대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안티키테라 기계는 바로 이 복합적 사유의 산물이며, 그것은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통제하려는 가장 원초적이고 숭고한 시도였다.
오늘날 우리는 디지털시계와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인공지능이 예측한 일식 일정을 몇 초 단위로 받아본다. 하지만 우리가 시간과 우주를 이렇게 손쉽게 다룰 수 있게 된 것은, 고대인의 손끝에서 시작된 사유의 유산 덕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연결을 잊은 채, 기술의 표면만을 소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안티키티라 기계는 우리에게 묻는다. "지성은 진보했는가, 아니면 분절되었는가?" 기술은 발전했지만, 그 바탕이 되는 사유는 과연 깊어졌는가?
그리고 시간 철학은 여전히 우리를 향해 조용히 말을 건넨다. 그 속삭임을 들을 때, 우리는 단절된 문명의 시간을 이어 붙이고, 잃어버린 인간의 지성사를 복원하게 된다.
우주 갈망
고대의 인간들부터 지금까지 아니 앞으로 미래까지 인간은 왜 우주를 갈망할까? 인간은 자기 존재의 기원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아마 우리의 DNA에 담겨 있는 것 같다. 드넓은 우주에서 지구, 지구에서 땅에, 땅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살고 있음은 설명될 수 없을 만큼 신비롭다. 인간의 뇌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생각하고 증명하며 내가 오기 전의 세상과 내가 가게 될 세상에 대한 사유를 하게 된다. 우리가 하늘을 보는 시선은 우리의 시작의 뿌리를 질문하는 첫걸음이었을 것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우리는 갑자기 작아지고 동시에 작음을 깨닫는 순간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더 무한한 꿈을 꾸게 된다. 우주의 무한함 속에서 인간의 유한함을 보고, 그 유한함을 뛰어넘는 시도를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지구의 환경에 따라 인간은 이동하다 정착을 하게 되고, 농사 기술의 발달로 기후를 알아야 했다. 땅만 봐서는 그 주기를 몰랐지만 하늘을 올려보는 순간, 하늘에는 질서와 규칙을 발견한다. 인간은 그 의미를 찾게된다. 그래서 수학, 천문학, 종교 그리고 철학까지 동원하며 우주의 정교함에 나는 어떤 의미를 가진 존재인가를 되묻는다. 우주는 냉정했고, 광대하며 사실 인간에게는 관심이 없다. 어쩌면 무의미함이 거대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인간은 우주를 바라보는 순간 시를 쓰고, 수학 공식을 만들며, 의미를 담으려는 철학을 이야기하며 단순히 생존을 위한 존재가 아닌, 의미를 담는 존재라는 것을 알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토록 아주 먼 옛날부터 우주를 알고 싶어했고,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피라미드, 스톤헨지, 마야, 신라 첨성대 등 여러 곳에서 우주를 담은 건축물들이 탄생한다. 이 모든 것들은 시간의 구조와 우주 질서를 담아내는 인간의 본능이다. 안티키테라의 톱니는 멈췄지만 그 안에 담긴 갈망은 여전히 살아 있다. 우주를 향한 눈은 곧 인간 자신을 향한 시선이고, 그 시선은 인간의 존재의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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