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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경쟁-기원, 그림자, 경쟁 없는 사회

by Polymathmind 2025. 4. 16.

경쟁의 기원

경쟁은 인간의 본성일까, 아니면 특정 사회적 제도가 만들어낸 환상일까? 우리는 자주 '세상은 원래 치열한 곳'이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그 말은 진실이라기보다, 오랜 시간에 걸쳐 학습된 사회적 명제일 수 있다.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이라는 개념을 통해 생존을 위한 경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실 다윈 자신은 생존의 방식으로 상호 협력과 공존의 가능성도 언급했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경쟁적 해석만을 취해 인간사를 설명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진화생물학자 프란스 드 발은 유인원 사회에서 관찰한 결과를 통해, 공감, 배려, 협동이야말로 진화의 핵심적 전략이었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결코 무한경쟁의 동물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고 연대할 수 있는 감각을 가진 존재다.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자신을 완성해 가는 존재인 것이다. 경쟁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지닌 속성이 아니라, 사유재산, 비교, 서열, 효율이라는 개념이 지배한 사회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방식으로 주입된 ‘프레임’ 일 수 있다. 즉, 경쟁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사회가 강요한 서사다.

경쟁의 그림자

경쟁은 동기를 부여하고 성장을 이끌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삶의 중심이 되었을 때, 인간은 본질적으로 무엇을 잃게 되는가? 현대인은 자신의 가치를 끊임없이 비교하고 측정받는다. 시험에서 1등을 하면 기쁨이 아닌 불안이 따라온다. '이번엔 이겼지만, 다음에도 이겨야 한다'는 압박. 이것은 성취가 아니라 강박의 구조다. SNS는 일상까지 경쟁의 장으로 만들어버렸다. 여행 사진, 아침 식사, 자녀 교육, 커리어 성과, 외모까지...모든 것이 ‘좋아요’와 ‘조회 수’라는 숫자로 평가된다. 우리는 이제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증명된 삶만이 의미 있다고 착각하게 되었다.

예술은 이 어두운 구조를 자주 조명해왔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은 사랑마저도 경쟁적 평가 속에 놓일 때 인간관계가 얼마나 쉽게 파괴되는지를 보여준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재능 앞에서 스스로의 삶을 저주하게 되고, 결국 예술이 아닌 질투에 불타는 고통의 목소리를 남기고 만다. 이러한 문학과 예술의 사례는 말한다. 경쟁은 때론 창조를 자극하지만, 결국 인간의 고유한 고유성을 파괴할 위험이 있다. 우리는 더 나아지기 위해 경쟁하지만, 그 경쟁은 오히려 내면의 목소리를 잃게 만든다.

경쟁 없는 사회

그렇다면 경쟁 없는 사회는 가능할까? 아니, 그보다는 경쟁이 삶의 중심이 아닌 사회, 경쟁이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 구조는 가능한가? 역사 속엔 경쟁을 줄이고 협력과 공존을 중심에 둔 공동체들이 존재했다.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모든 구성원이 기업의 공동 소유자이자 의사결정권자이며, 최고 임금과 최저 임금의 차이를 최소화해 ‘함께 사는 경제’를 실험하고 있다. 북유럽의 학교에서는 성적 순위를 매기지 않고, 학생 각자가 자신만의 리듬으로 배울 수 있도록 장려한다. 이는 성취보다 과정, 경쟁보다 성장을 중시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경쟁 없는 사회가 단지 공상적인 유토피아가 아니라, 실제로 가능하고 작동할 수 있는 삶의 모델임을 보여준다.

물론, 경쟁이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다. 경쟁은 여전히 인간의 동기와 열정을 자극하는 힘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경쟁이 나를 타인과 비교하며 존재를 입증하는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를 확장해 가는 성장의 통로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진정한 경쟁은 타인을 이기려는 싸움이 아니라, 어제보다 나은 나 자신이 되기 위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나의 가치를 외부로부터 증명 받지 않아도 되는 사회, 누군가보다 앞서야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삶이 존중받는 사회가 아닐까? 비교와 등수는 사라지고 나의 존재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는 경쟁 구조에서 태어났지만, 경쟁 구조 안에서 갇혀 살 이유는 없다. 타인과의 비교가 아닌, 나와의 관계가 건강하다면 얼마든지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