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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영화 '덩케르크' - 시간, 존재, 윤리

by Polymathmind 2025. 4. 9.

덩케르크

영화 '덩케르크'

2017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전쟁 영화 '덩케르크'가 개봉한다. 이 영화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전쟁의 잔혹함과 생생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제치고 가장 흥행한 제2차 세계대전 영화가 된다. 놀란 감독은 '이 영화는 전쟁 영화가 아니다'라고 발언한 만큼 다른 전쟁 영화와 차별을 두었다.

1940년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된 40만여 명의 영국, 프랑스, 벨기에, 폴란드, 네덜란드 5개국의 병력은 영국으로 탈출을 기다리고 있다. 독일군의 급작스러운 진격에 연합군은 당황하며 갈라지고 덩케르크 해변에 몰리게 된다.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제2차 세계 대전은 영국과 프랑스에게는 버거운 전쟁이었다. 독일은 영국과의 긴밀한 외교 관계를 원했기에 덩케르크의 영국군이 있는 것에 고민한다. 결국 33만여 명의 연합군은 영국으로 철수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영화의 OST는 거장 한스 짐머가 맡았다. 첫 장면부터 시작되는 손목시계 소리는 끊임없이 플레이된다. 들리기도 안들리기도하며 효과음을 뛰어넘어 심장을 압박한다. 관객은 주인공의 생존 압박을 청각으로도 체험하게 된다. 마치 시간이 흐르지 않고 짓누르며 음악은 감각이 된다. 한스 짐머는 관객에게 소리의 착시현상을 느끼게 한다. 끊임없이 음이 올라가는 듯한 음악을 사용하는데 일명 '셰퍼드 톤'이란 방식을 쓴다. 앞서 언급했듯 이 영화는 총알과 포탄이 몰아치는 전쟁 영화가 아니다. 총격과 포탄은 손가락으로 셀 정도밖에 없다. 하지만 끝없이 음악이 고조되면서 느끼는 긴장감은 시간의 미로로 빠져들게 한다. 그리고 영화 내내 들리는 배경소리들 예를 들면, 파도 소리, 총성, 비행기 소음, 바람 소리 등은 음악과 섞이며 현실의 공포를 넘어 비현실적인 곳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격렬함이 멈출 때는 잔잔한 멜로디로 마무리하며 마지막 호흡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스 짐머는 또 하나의 거대한 업적을 남긴다. 

시간

놀란 감독은 세 가지 시간대를 순차적으로 배치한다. 육지의 1주일, 바다의 1일, 하늘의 1시간. 이것은 베르그송의 '순수 지속' 개념이다. 물리적인 시간이 아닌, 의식 속에서 경험되는 질적인 시간을 말한다. 각각의 인물들은 같은 시간에 다른 감정과 존재를 느낀다. 해변에 고립된 각 국의 병사들의 1주일은 생과 사를 동시에 경험한다. 나의 1주일과는 질적으로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바다에서의 1일은 연합군을 구하러 오는 민간인들의 시간이다. 그들의 하루는 국가를 구하는 성스러운 순간이며 위대한 사명감의 하루였다. 하늘의 1시간은 연료가 줄어드는 가운데 해변의 동료를 위해 귀환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며 끝까지 싸우는 가장 긴박하고 어려운 선택의 순간을 그렸다. 1주일의 생존, 1일의 용기, 그리고 1시간의 선택은 모두 같은 진실을 말한다. 그리고 이 시간들은 연결된다. 비행기가 해변으로 출동하는 모습은 바다에서 보고, 그중 비행기 한 대가 격추되는 것을 배에서 보고, 마지막 남은 비행기가 폭발하는 것은 육지에서 목격을 한다. 이러한 교차점은 다른 공간처럼 설명했지만 결국 하나의 사건으로 합쳐진다. 

덩케르크의 시간은 단지 배경이 아니라, 전쟁의 공포, 인간의 용기,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며, 전쟁을 '보게'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살게'한다. 

존재

덩케르크에서는 대부분 이름이 불려지지 않는다. 그들은 역할 혹은 상황으로 정의된다. 육지 시간의 주인공 '토미'는 영화 후반에 언급된다. 민간인 개인 선박 선장인 미스터 도슨만이 종종 언급된다. 대부분 병사, 조종사, 장교들은 이름이 불려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전쟁에서는 개인이 아닌 존재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관객은 주인공만을 따라가는 방식이 아닌 상황에 휩쓸려가는 방식이 되며 두려움과 희망의 몰입은 커져간다. 곧 '토미'는 '나'일 수도 있게 된다. 영국에서 덩케르크로 떠나는 미스터 도슨은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을 구하려 떠난다. 이름을 몰라도 인간을 구해야 하는 윤리를 가지고 출발한다. 이 영화는 기존의 주인공 중심의 영웅주의적 흐름에서 그냥 평범한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또 특이한 점은 이 영화에는 독일군이 딱 한번 등장한다. 첫 장면에서 '토미'가 도시의 거리에서 받은 총격 장면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비행기가 떨어진 후, 저 멀리 흐릿하게 독일군이 등장한다. 그리고는 적은 등장하지 않는다. 적의 존재를 보여주지 않으면 공간 자체가 공포가 된다. 전쟁의 진정한 적은 '적군'이 아니라 전쟁 그 자체인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윤리

미스터 도슨은 윤리적 선택함으로 전쟁의 비인간성 속에서도 인간임을 증명한다. 그가 자신의 아들 친구인 조지의 죽음 앞에서의 침묵한 장면은 무의미한 진실보다, 의미있는 침묵을 선택한 장면이다. 전쟁에서의 진실은 과연 항상 옳을까? 도덕적 판단이 가능할까? 미스터 도슨의 침묵은 책임 있는 선택이었다. 조지의 죽음을 의미 있게 남기기 위함이며 병사의 트라우마의 연민의 선택이었다. 사실 평론가들은 이 장면에서 영화가 끝났다면 더 명작이 되었을 거라 말한다. 하지만 놀란 감독은 마지막에 지역 신문에 작게나마 '덩케르트에서 죽은 영웅 소년'으로 실린 신문 장면을 보여준다. 조지의 죽음의 공허함은 인간의 언어가 그 의미를 기억하게 한다. 철학자 빅터 프랭클은 이렇게 말한다. '삶의 의미는 우리가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억하느냐에 달려 있다' 

진실이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침묵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