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215 우주적 인간주의자 - 칼 세이건, 코스모스(우주) 철학자 인간은 언제부터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였을까? 갈릴레오와 코페르니쿠스의 망원경이 하늘을 열었을 때, 케플러와 뉴턴으로 이어지는 1차 과학혁명 때였다. 이때 인간의 자존심은 무너졌다. 그 상실의 자리에서 또 다른 시야가 열렸다. 2차 과학혁명은 산업혁명의 시작되고, 3차 과학혁명으로 더 먼 우주로 나아가며 이때 인간이 비록 중심은 아닐지라도,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자각 한다. 칼 세이건은 바로 그 인식의 경계에 서 있던 사람이다. 그는 과학자이자 시인이었고, 합리주의자이자 인문주의자였다. 그의 철학은 냉철한 이성과 따뜻한 경외가 맞닿은 지점에서 출발한다.세이건의 핵심은 “우리는 별의 먼지로 이루어져 있다”는 명제다. 이 문장은 단순한 과학적 사실을 넘어, 인간 존재에.. 2025. 10. 18. 후기 낭만 음악가 - 구스타프 말러의 철학 필자가 미국에서 유학 중, 학교에서 주최하는 말러 콩쿨에 나간 적이 있었다. 말러의 곡은 처음 접했던 터라 생소했고, 그에 대해 잘 몰랐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도 교수님과의 이야기를 하는 중에 말러에 대한 첫인상은 생소함에서 호기심으로 바뀌었고, 음악에 푹 빠지게 되었다. 아쉽게도 그 콩쿨에서는 입상을 못했지만, 준비과정에서 받았던 그의 숨결은 나의 음악을 바꾸고도 남았다. 세계 전체를 담고 싶은 음악말러는 “교향곡이란 세계를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짧은 문장에 그의 철학이 그대로 담겨있다. 그는 음악을 통해 인간 존재 전체, 즉 생명, 고통, 구원, 죽음, 그리고 그 너머의 세계를 모두 포괄하고자 했다. 그가 살던 시대는 근대적 확신이 붕괴하던 시기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기술의 힘으로 자연.. 2025. 10. 17. 도시 인문학 19 - 폴란드 바르샤바, 역사와 음악이 흐르는 도시 파괴와 재건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는 13세기 작은 마을에서 성장하여 1596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수도로 지정된 이후,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 독일의 폭격과 바르샤바 봉기로 인해 85%가 파괴되었다. 특히 구시가 광장은 거의 완전히 무너졌지만, 시민들은 도시를 정교하게 재건하며 역사적 공간과 공동체적 기억을 되살렸다. 대규모 복원 작업이 국가적 의지의 산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 인정되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한다. 오늘날의 바르샤바는 과거의 참혹함과 현재의 활기가 공존하는 도시로, 재건된 건물과 광장 하나하나가 도시의 시간과 인간의 끈기를 보여준다.쇼팽과 도시의 예술적 정체성바르샤바는 음악과 예술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재확인해.. 2025. 10. 16. 영화 '쉰들러 리스트' - 인간을 구한 인간 1993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가 개봉한다. 필자가 중학교 시절, 아버지께서 꼭 봐야하는 영화라며 가족이 모두 보자고 하셨다. 아마 그때 영화관이란 곳을 처음 간 것 같다. 첫 영화관 관람은 나에게 엄청난 각인으로 남았다. 가족과의 관람, 그리고 충격적인 장면들은 사실 중학생인 필자에겐 그러했다.이 영화는 원작 소설 '쉰들러의 방주'를 영화로 제작한다. 영화음악의 대가 존 윌리엄스는 영화의 깊이를 더해준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전쟁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양심, 도덕, 그리고 기억에 대한 질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어둠 속, 한 사람의 선택이 수천 명의 생명을 구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역사적 일화가 아니라 인간성의 가능성을 증언하는 이야기다. 스필버그는 카메라를 통해 폭.. 2025. 10. 15. 우리가 잃어버린 것 11 - 웃음 웃음, 인간 존재의 불완전성을 비추는 거울웃음은 인간이 가진 가장 본능적이고도 섬세한 표현이다. 그러나 웃음은 단순한 유희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부조리나 모순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웃을 수 있다고 보았다. 웃음은 인간의 이성과 감정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우리는 결핍된 존재이기에, 완전하지 않은 세계를 마주할 때 그 모순 속에서 웃게 된다.어린 시절의 웃음은 순수하다. 이유 없이 터지는 웃음, 친구와의 장난 속의 웃음, 가족과 나누는 대화에서 웃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며 사회적 규범과 자기 통제의 무게가 커질수록 우리는 웃음을 잃는다. 웃음을 잃는다는 것은 단순히 기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자연스러운 감각과 존재의 거리감을 잃는 일이다. 웃음을 잃어버린 시대에 대해 생각.. 2025. 10. 14. [추추책] 프랑스사 산책 리뷰 - 피의 혼인 속에서 피어난 혁명의 정신 알렉상드르 뒤마의 '프랑스 역사'는 단순히 한 나라의 역사를 서술한 책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욕망, 권력, 그리고 자유에 대한 서사시다. 뒤마는 문학가의 시선으로 역사를 재구성하며, 건조한 연대기 대신 인간의 감정이 살아 있는 이야기로 과거를 되살린다. 그가 묘사한 프랑스의 역사는 피와 혼인으로 얽힌 복잡한 관계망이었고, 그 속에서 한 시대의 희극과 비극이 교차했다.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프랑스의 역사가 곧 유럽의 역사였다는 사실이다. 프랑스의 왕실은 고립된 섬이 아니었다. 혼인은 곧 외교였고, 사랑은 정치의 언어로 대체되었다. 딸 하나의 결혼은 국경을 바꾸었고, 사위 하나의 야망은 전쟁을 불러왔다. 혈연은 연합의 끈이었지만, 동시에 전쟁의 명분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왕가의 결혼은 대.. 2025. 10. 13. 이전 1 2 3 4 ··· 3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