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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On the Map - 제임스 레넬, 전설의 콩 산맥, 지도의 변화

by Polymathmind 2025. 1. 31.

제임스 레넬과 콩 산맥의 탄생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 세계는 여전히 많은 미지의 공간을 품고 있었다. 인간은 지구를 이해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탐험과 지도 제작에 열을 올렸고, 그 과정에서 상상과 사실이 뒤섞인 흥미로운 이야기가 탄생한다. 그중에서도 서아프리카에 존재하지 않는 산맥, '콩 산맥 Mountains of Kong'의 등장은 지도 제작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례 중 하나다.

콩 산맥의 첫 등장은 영국의 지도 제작자 제임스 레넬(James Rennell)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레넬은 서아프리카 지역의 지도를 제작하면서 니제르 강(Niger River)의 수원과 흐름을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당시 서아프리카 내륙은 유럽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이었고, 그는 탐험가들과 상인들이 제공한 단편적인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몇몇 탐험가들은 서아프리카 내륙에 산맥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고, 레넬은 이 단서를 바탕으로 거대한 산맥을 지도에 삽입했다. 이 산맥은 니제르 강의 수원을 설명하는 논리적 구조물로 여겨졌고, 레넬의 지도를 통해 마치 실제 지형처럼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콩 산맥은 이렇게 상상과 추측의 결과물로 탄생했으며, 이후 19세기 내내 많은 지도에 반복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제임스 레넬의 콩 산맥(빨간 줄)

존재하지 않는 '콩 산맥'의 지속

콩 산맥이 지도에 삽입된 것은 단순한 실수였지만, 이후에도 꾸준히 복제되며 확산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당시의 지도 제작 환경은 권위 있는 자료를 검증 없이 복제하는 관행이 널리 퍼져 있었다. 제임스 레넬은 당대 가장 신뢰받는 지도 제작자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의 지도는 의심 없이 받아들여졌고, 이후 제작된 지도에서도 콩 산맥이 그대로 복사된다.

둘째, 산맥이라는 지리적 요소는 단순히 빈 공간을 채우는 상징 이상의 역할을 했다. 19세기 지도 제작자들은 세계를 논리적으로 이해하려 했고, 강의 수원과 흐름을 설명하기 위해 산맥이 필요했다. 콩 산맥은 이러한 필요성을 충족시키는 이상적인 요소였다. 이는 당시 지도 제작이 과학적 정확성보다 설득력 있는 서사-스토리텔링을 중시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 유럽의 아프리카 탐험이 본격화되면서 콩 산맥의 신화는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다. 프랑스 탐험가 루이 구스타브 부브니(Louis Gustave Binger)는 1887년부터 1889년까지 서아프리카를 탐험하며 콩 산맥의 실재를 확인하려 했지만, 그곳에 산맥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탐험 보고서를 통해 콩 산맥은 단순한 오류로 판명되었고, 이후 제작된 지도에서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콩 산맥' 이후, 지도의 변화

당시는 지구의 많은 부분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잘 모르는 부분은 비워두는 대신, 인간의 상상력으로 서사로 채웠다. 호기심의 자극과 다녀온 사람들의 경험을 정보로 지도에 기록한다. 그래서 18~19세기 지도까지 커다란 코끼리, 뱀, 곰 그리고 용까지 삽화로 넣는다. 이때는 지도를 과학적 도구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예술품의 하나로 여겼던 문화적 배경도 있다. 지역의 문화적, 생태적 그리고 상징적으로 묘사하여 호기심을 자극한다. 또한 유럽의 왕실이나 돈 많은 상인들은 이 거대한 서사를 담은 지도를 보고 투자를 결심하기도 한다. 콜럼버스나 베스푸치도 아마 이런 지도를 들고 마케팅을 했으리라. 지도를 제작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들 모두에게 상상력을 부여하고 정보를 쉽게 기억하게 만들고, 미지의 세계를 가본 듯 공유하는 역할을 했다. 

19세기말, 과학적 탐사와 지도 제작 기술이 발전하면서 '스토리텔링식' 지도는 사라지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단순하고 명료하며 그곳을 며칠 전 영상으로 볼 수 있는 지도가 탄생한다. 이제 지구상에 미지의 세계는 거의 없으니까 스토리텔링보다는 객관성과 효율성의 방향으로 변화한다. 

콩 산맥은 더 이상 지도 위에 존재하지 않지만, 이 이야기는 지도 제작과 탐험의 역사에서 중요하다. 이 산맥은 단순히 허구의 지형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벌어진 실수와 상상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당시의 과학적 한계와 상상력, 그리고 세계를 바라보는 인간의 본질적인 태도가 담겨 있다. 인간은 과거의 오류에서 배우고, 오늘날 우리가 만들어 가는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넘쳐나는 지식과 정보의 양은 이미 우리의 뇌용량을 넘어선다. 분별력 없는 받아들임은 우리를 얼마나 왜곡할 수 있는지를 늘 질문해야 하며, 상상과 망상의 경계에서 늘 깨어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