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의 미술
바로크 시대의 기초는 르네상스이다. 인간의 탐구를 시작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탐구이다. 전보다 역동적이고 감정작이며 드라마틱한 특징이 있다. 르네상스 후기의 카라바조의 영향으로 빛을 극적인 명암 대비로 사용하며 사실적인 표현을 시작한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변화를 싫어한다. 특히 나이가 들었거나, 권력을 가진 이들은 더 그렇다. 하지만 그 변화를 읽는 사람은 나이가 들었거나, 권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 흐름을 역행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시간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흐름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가 계속 변화해야 하는 이유이자, 숙명이다. 특히 리더라면, 리더가 되고자 한다면 흐름에 민감하며 현재를 보는 눈뿐만 아니라 미래를 보는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인문학의 시작점이었다. 훌륭한 리더를 갖고 싶거나, 위대한 리더가 되려는 자의 질문, '나는 누구인가?'이다. 르네상스에서 바로크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많은 이들은 이 질문을 하거나, 묵살했을 것이다. 예술 장르에서는 이 문제는 매우 민감하다. 선구자인가, 돌아이인가는 정말 깻잎 한 장 차이니까. 르네상스 시대는 종교를 탈피하려 했다면, 바로크 시대는 다시 중세시대처럼 종교의 권위가 높아진다. 하지만 중세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신 중심의 예술에서 인간 중심의 예술 그리고 더 나아가 감정과 경험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중세 미술은 영적이고 추상적이지만, 바로크 미술은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전달한다. 마치 90년대 휴대폰 사진과 2025년의 휴대폰 사진의 차이처럼 말이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루벤스는 화가로만 알려져 있지만, 그는 외교관, 학자, 수집가로 활약하며 유럽 문화와 정치 전반에 깊이 관여한 인물이다. 그도 폴리매스였다. 플랑드르(현 벨기에)에서 종교 박해를 피해 독일로 망명한 가정에서 태어나 인문주의 교육을 받으며 고전문학과 언어(라틴어, 그리스어 등)에 능통했다. 후에 그의 작품에 신화와 역사적 주제가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이탈리아로 떠나면서 본격적인 예술가의 길을 걷는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작품에서 큰 영향을 받는다. 이때 종교적 주제를 다룬 대형 제단화인 '십자가에서 내려짐'은 그의 초기 걸작 중 하나이다. 이 작품도 바로크 화풍이 듬뿍 담긴 작품으로 구도와 역동성 그리고 인간의 감정을 잘 표현한다.
1621년, 스페인의 펠리페 4세와 잉글랜드 찰스 1세 사이에서 평화를 중재하는 외교 임무를 맡으며 그림으로 기록하거나 궁정 생활을 담기도 한다. 특히 프랑스 왕비 '마리 드 메디치'의 삶을 그린 24점의 대형 연작은 바로크 미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루벤스는 미술뿐만 아니라 학문적, 외교적 활동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의 삶은 예술과 정치 그리고 사회가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 활동은 정치적 선전으로 사용되었다. 그의 작품은 평화의 상징이나 외교적 중재의 도구로 사용된 것이다. 그것은 권력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며 다른 나라와의 문화 교류를 이끌어 내기도 한다.
예술과 정치
예술과 정치의 연결은 매우 민감하게 작동한다. 예술은 개인의 창의력과 자유를 표현하며 그것이 보장되어야 한다. 특정 이념이나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과 가치를 다뤄야 하며 순수하고 독립적이어야 한다. 예술과 정치의 관계가 '철저히 분리'되거나 '완전히 연결'될 필요는 없고, 예술의 독립성과 사회 책임의 경계 위에 서 있어야 한다. 정치의 압박에서 자유롭게 정치적 주제를 다루며 질문을 던져 성찰을 유도해야 한다. 이것이 예술가가 해야 하는 미션이다.
루벤스는 그 경계를 잘 유지한 인물일까? 프랑스 왕비 '마리 드 메디치'의 연작은 정치적 선전 작품이지만 동시에 신화적 상징과 바로크적 미학을 지니므로 예술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된다. 잉글랜드와 스페인의 평화 협정 사이에서 그의 작품이 교환되지만 작품의 독립적 가치는 유지했다. 루벤스는 예술과 정치의 경계에서 독립성과 타협을 동시에 추구한 인물로 볼 수 있다. 그는 단순히 예술을 정치의 도구로 내주지 않았고, 동시에 정치적 상황 속에서 예술적 가치를 높이는 방법을 찾아냈다. 루벤스는 경계를 완벽히 지킨 사람은 아닐 수 있지만, 예술이 정치와 연결되면서도 진정성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인물이다. 그는 이 경계에서 균형을 잡고자 했던 예술가로, 후대의 예술가들에게도 중요한 영감을 준 인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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