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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On the Map-가이드북, 여행과 문화

by Polymathmind 2025. 2. 20.

가이드북의 기원

대부분 지도를 중요하게 사용하는 경우는 외국에서였을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아닌 전혀 익숙치 않은 곳에서는 지도가 아주 중요하다. 필자가 외국에서 공부할 때는 내비게이션이 막 시판될 때였다. 가난한 유학생은 버스를 타던, 지하철을 타던, 렌터카를 빌리던 수십 번 접힌 종이 지도를 가지고 다녔다. 처음 밟은 외국 땅은 동양인에게는 탐험의 대상이었다. 추운 겨울임에도 길을 찾으려면 왜 그리 땀이 났는지. 

기원전 5세기경 헤로도토스는 자신의 저서 '역사'에서 다양한 지역과 문화에 대한 여행 정보를 기록한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안토니니의  '이티네라리움'가 있었다. 이 가이드북에는 로마 제국 전역의 도로망과 경로를 정리하였고, 그 안에 도시, 요새, 여관 등을 상세히 기록한다. 초기 기독교 시대 때는 프랑스 보르도에서 예루살렘까지 이동한 여정을 기록한 가이드북도 있다. 어느 무명의 순례자가 쓴 이 가이드북은 운송 수단을 갈아탄 횟수와 지역을 묘사하는데, 예루살렘으로 가까워지면서 과장된 표현이 흥미롭다. 

이 두 문서는 단순한 여행 안내서는 아니다. 당시의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배경을 반영한 역사 문서로 분류한다. 이 형식의 지도는 후에 여행 문화에 영향을 미쳤다. 관광을 뜻하는 투어 tour는 그리스어로 원형 운동을 뜻하는 토르노스 tornos에 기원하는데, 출발점에서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을 뜻한다. 

19세기 유럽에서 지금의 형식과 비슷한 가이드북이 시작된다. '존 머레이'가 제작한 '머레이' 가이드북은 누구나 홀로 여행을 할 수 있도록 한다. '머레이' 가이드북은 빅토리아 시대의 번영과 철도의 빠른 확산과 맞물렸기에 대중들 특히 여성들에게 즐거움과 지도의 가치를 누리게 한다.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때문에 유럽 여행이 어려웠던 시기가 지났기 때문에 여행에 대한 갈망을 폭발한다.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스위스, 프랑스를 다룬 직접 제작을 시작으로 대영제국의 인도, 뉴질랜드, 일본까지 제작하게 된다. 그의 가이드북에는 스위스 지도를 펴면 몽블랑이 그려져 있고, 이집트 지도를 펴면 피라미드가 솟게 만들었다. 사실 '머레이' 가이드북은 독일의 카를 바데커의 가이드북을 표절한 의혹이 있었지만 바데커는 넉넉하게 머레이와 친구 먹으며 상대의 언어로 출판만은 하지 않기로 한다. 베데커도 많은 가이드북을 출판하면서 일반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베데커링'이라는 단어가 영어에 편입되면서 어떤 주제에 대해서 믿음직하고 종합적이다라는 용어로 쓰이기 시작한다. 

여행과 문화

집을 나서지 않아도 세계 여행을 할 수 있도록 해준 고마운 지도는 해로운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독일은 유대인을 쫓아낸 지역을 표시하는데 '베데커 가이드북'을 사용하고, 베데커가 만든 '영국 가이드북'은 히틀러가 영국을 공습할 때 문화유적지만 골라 폭탄을 떨어뜨리는 참고 자료가 된다. 당시의 제국주의 입장의 식민지 탐험하는 방식으로 서술되며 아프리카와 아시아는 철저히 서구적 관점에서 서술되어 미개하거나 하찮게 그려지기도 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에서는 타이어 회사 미슐랭이 지도에 관심을 갖는다. 당시 프랑스에는 가이드북이 별 이용가치가 없다고 느꼈다. 미슐랭은 타이어를 팔기 위해 지도를 이용했고, 회사 운영에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부각된다. 정비소와 주유소만 안내했던 지도에서 식당, 숙소 그리고 유적지까지 표시하며 전 유럽을 그려낸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연합군이 미슐랭 지도로 전쟁을 하기도 한다. 당시 참전한 미군이었던 유진 포더는 자국으로 돌아와 지도를 제작했으나 미국인들에게는 크게 어필되지 않는다. 

미슐랭 가이드

1970년대가 되면서 포더의 가이드북이 주목을 받는다. 유럽의 관광 붐이 일어나 색다른 곳의 여행지를 찾기 시작한다. 더 친근하게 더 자연스럽게 여행객들에게 다가가는 지도로 변화하면서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그리고 미국은 자동차 산업의 대성공으로 미슐랭 지도를 찾기 시작한다. 프랑스 미슐랭은 전통 고급 레스토랑을 안내했다면 미국은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지도로 변했다. 미국의 자본주의적 소비문화에 따라 대도시 중심의 다양한 요리 스타일의 레스토랑을 안내하며 레스토랑의 브랜드화를 가져왔다. 

아직도 서구적인 시각의 지도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현대 가이드북은 각 지역의 문화를 존중하는 여행을 위한 제작이 많아지고 있다. 또한 단순 소비 중심의 여행이 아니라 자연과 지역 사회, 문화와 연결된 여행을 안내한다. 특히 대한민국은 한류 문화에 영향으로 과거와는 다른 여행이 이루어지고 있다. 외국인들은 드라마 촬영지나 K-pop 스타들이 방문한 장소 또는 콘서트를 위한 여행이 많아졌다. 국내 여행객들은 테마를 가진 가이드북과 지역에 오래 머무는 여행이 인기이다. 여행은 지도에서 시작했고, 문화에 따라 필요에 따라 변했다. 역사와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여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지도는 더욱 발전되어 휴대폰에 지도가 깔려, 호텔과 관광 명소의 위치를 찾는 것은 물론 그곳을 향하는 나를 볼 수 있다. 이제 종이 지도는 사라져가지만, 가끔 종이 지도가 그립다. 손가락 따라 길을 쓸다 보면 주변을 더 자주 봐야 하고 인터넷이 안 되는 깡시골에서도 정확히 볼 수 있고, 접힌 부분이 닳아 구멍이 뚫리면 테이프로 보수하는 아날로그 감성을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