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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후기 낭만 음악가 - 구스타프 말러의 철학

by Polymathmind 2025. 10. 17.

필자가 미국에서 유학 중, 학교에서 주최하는 말러 콩쿨에 나간 적이 있었다. 말러의 곡은 처음 접했던 터라 생소했고, 그에 대해 잘 몰랐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도 교수님과의 이야기를 하는 중에 말러에 대한 첫인상은 생소함에서 호기심으로 바뀌었고, 음악에 푹 빠지게 되었다. 아쉽게도 그 콩쿨에서는 입상을 못했지만, 준비과정에서 받았던 그의 숨결은 나의 음악을 바꾸고도 남았다. 

세계 전체를 담고 싶은 음악

말러는 “교향곡이란 세계를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짧은 문장에 그의 철학이 그대로 담겨있다. 그는 음악을 통해 인간 존재 전체, 즉 생명, 고통, 구원, 죽음, 그리고 그 너머의 세계를 모두 포괄하고자 했다. 그가 살던 시대는 근대적 확신이 붕괴하던 시기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기술의 힘으로 자연을 지배했지만, 정신적으로는 공허해지고 신은 침묵했다고 인식한다. 이때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했고, 말러는 그 침묵의 세계에서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음악으로 질문하기 시작한다. 

쇼펜하우어는 예술을 통해서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말러 역시 음악을 구원의 통로로 여겼다. 그의 작품에서 죽음은 단순한 종말이 아니라, 존재가 완성되는 지점이며, 음악은 그곳으로 가는 여정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교향곡 제2번 ‘부활’은 죽음의 절망에서 시작해 영적 부활로 끝난다. “부활하리라, 너는 반드시 부활하리라”라는 합창은 단순한 종교적 신앙이 아니라, 인간 의지와 정신의 초월적 가능성을 상징하려했다. 말러는 신의 부재 속에서도 신을 향한 인간의 갈망을 노래한 것이 아닐까?

죽음 속에서 삶을 본다

말러의 음악은 궁극적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인간의 초상이다. 그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지만, 동시에 삶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그렇다면 왜 말러는 죽음에 집중했을까? 말러의 인생은 죽음의 연속이었다. 형제자매 여덟 명의 죽음, 유대인 차별, 사랑의 불안, 그리고 딸의 죽음까지 그의 삶은 상실을 안고 사는 존재였다. 삶은 우리를 끊임없이 내치지만 그 속에서 의미를 찾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으로 끝까지 저항하려 했다. 그래서 말러의 음악은 내면의 세계를 무대로 삼는다. 답이 없는, 합리적이지 않은 존재, 늘 불안한 선택을 해야 하는 삶, 즉 모순의 집합체로 해석한다. 그의 음악에서의 불협화음은 긴장감을 주기 위해서만 쓰인 것이 아니라, 질문이다.

그의 후반기 작품, 특히 '대지의 노래(Das Lied von der Erde)'와 '교향곡 제9번' 은 죽음을 단순히 슬픔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 속에는 죽음조차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고요한 초월이 그려져 있다. '대지의 노래' 마지막 부분에서 음악은 점점 사라지며 “Ewig… ewig…” (영원히… 영원히…)라는 속삭임으로 끝나는데,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존재가 자연으로 스며드는 순간, 인간이 다시 ‘대지의 일부’가 되는 순간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말러의 인간관이 서구적 구원론보다 동양적 순환의 사상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는 실제로 불교와 중국 시(이백, 맹호연 등)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대지의 노래'의 가사 대부분은 중국 시인들의 작품을 독일어로 옮긴 것이다. 그는 ‘삶과 죽음이 서로를 품는 순환의 세계’를 음악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말러가 생각한 인간은 절망 속에서도 의미를 찾으려는 존재, 죽음을 통해 삶을 이해하는 존재다. 그는 인간의 유한함을 고통스럽게 응시하면서도, 그 안에서 아름다움과 평화를 발견하려 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을 들으면, 절규와 침묵, 혼돈과 질서, 눈물과 위로가 공존하는 듯 하다. 그것은 곧  고통받으면서도 사랑하는 존재로서의 남고 싶은 인간이 아닐까?

말러의 궁극적 질문 , “인간은 어디로 가는가?”

말러는 철학자처럼 이성으로 답을 찾지 않았다. 대신, 소리로 질문을 던진고, 음악으로 끊임없이 묻는다.

“삶은 왜 이렇게 덧없는가?”    “죽음은 끝인가, 혹은 시작인가?”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

그의 교향곡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 존재에 대한 대답이 명확히 주어지지는 않지만, 그 질문을 품는 과정 자체가 구원처럼 느껴진다. 말러는 진리 혹은 답을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진리를 향해 가는 인간의 여정을 들려준다. 삶은 덧없지만, 그 덧없음이야말로 아름답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존재의 음악’, '삶의 철학’이라 할 수 있다. 그 속에는 신의 침묵을 두려워하면서도, 여전히 신을 사랑하고 믿으려는 인간의 고귀한 몸부림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