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의미
침묵은 단순히 말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억압과 나의 의지를 보이는 상징으로, 때로는 깊은 사유와 내면화의 도구로 기능한다.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침묵은 적극적인 의미를 지니는 행위로 존재해 왔다. 언어는 인간의 사유를 구체적으로 하기 시작하고, 언어로 역사를 기록하며 인간은 학습을 통한 그 의미를 각자의 도구로 사용한다. 때로는 침묵으로 대화를 대신하기도 하며 언어가 담아낼 수 없는 감정, 상태, 그리고 나의 존재를 나타낸다. 중국의 철학자 노장은 '침묵은 언어를 초월한 깨달음과 연결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기독교 수도원에서는 침묵으로 신과 교감을 추구하며 행동으로 표현하고, 불교 선종은 깨달음은 언어로 설명될 수 없고,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간디는 매주 '침묵의 날'을 실천하며 저항을 나타냈고, 중국의 천안문 사태는 언급이 금지되었지만 '그날'이라고만 기억하며 공동체적 기억으로 공유한다. 예술에서는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창조한다. 존 케이지라는 현대음악의 거장은 '4분33초'라는 곡을 작곡한다. 이 곡은 4분 33초 동안 연주자는 아무 소리를 내지 않는다. 관객의 숨소리, 헛기침 소리, 의자 삐걱이는 소리 등 우리가 미처 듣지 못한 소리를 드러내며 침묵은 단순히 공백이 아님을 보여준다. 침묵은 언어를 뛰어넘어 더 깊고 본질적인 메시지를 받거나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침묵의 사유
침묵은 그저 없음이 아니라, 적극적인 의미를 가진 행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어떨까? 과잉된 정보와 언어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드러내는 것(PR)이 미덕이라 하여 침묵이 용납되지 않는 것 같다. 사회적 이슈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지 않으면 비난을 한다. 지금은 모든 행동이 데이터로 기록된다. 검색 기록, SNS 활동, 심지어 사적 대화까지 분석된다. 침묵을 하면 사회에서 단절되는 현상도 벌어진다. 복잡한 사회, 감시의 사회에서는 침묵은 너무 복잡한 의미를 갖게 된다. 조금만 다른 관점으로 본다면 하루에도 수십 개의 뉴스, 메시지, 광고에 노출이되어 깊이 생각할 시간이 없다. 침묵으로 단절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디지털 디톡스라는 실천을 추천하기도 한다. 잠시의 정신적 휴식과 새로운 생각을 위해 나에게 꼭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우리에게는 침묵할 권리가 보장되고 있고, 앞으로 보장될까? 표현의 자유만을 강조하고 있는 지금, 침묵할 자유는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침묵에 익숙해질 수 없는 상황에서 침묵을 선택하는 것은 의미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질문도 하게 된다. 불의를 보고 침묵하는 것, 즉 윤리적인 문제와 맞물리면 그 경계는 불분명해진다. 깊이 사고하고, 공감하며, 윤리적인 책임을 충분히 사유하는 것과 충분한 사유 없이 책임을 회피하거나 그저 다수의 소리를 따라가는 것의 경계말이다. 어렵다. 그 누구도 답을 내릴 수 없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의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침묵하는지, 우리의 침묵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충분히 생각해야 한다. 침묵은 항상 같은 의미를 가질 수 없다. 특히 지금처럼 과잉 정보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서로 설득하는 능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진짜 의미'를 찾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보다 정말 괜찮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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