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학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보마르셰 3부작, 모차르트, 변화

by Polymathmind 2025. 3. 24.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앞서 1월에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를 통해 모차르트의 이야기를 이미 했다. 그의 천재성과 그 속에 숨은 아픔은 우리와 그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은 그의 삶과 음악 여정보다는 그의 죽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의 죽음과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낭만적인 면으로 보자면 그의 작품의 성질과 그의 마지막 상황은 그의 죽음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고 있었다고 한다. 혹자는 신이 그를 통해 내려줄 음악이 모두 소진하여 그를 다시 신의 옆에 데리고 갔다는 멋진 말로 묘사를 하기도 한다. 연필의 흑심이 닳듯, 건전지가 닳듯 그의 건강은 눈에 띄게 나빠지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학자들은 그의 음악적 성공을 보자면 그의 음악은 성공을 거듭하였고, 그의 죽음이 가족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는 점에 그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고 해석한다. 이 해석으로 인해 그가 암살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등장했고, 이 소재는 영화 '아마데우스'의 소재가 되며 모차르트의 경쟁자였던 살리에리가 큰 오해를 받기도 했다. 사실 살리에리도 당대 뛰어난 작곡가로 빈의 궁정작곡가가 되었다. 베토벤, 슈베르트, 리스트, 체르니 등의 스승이기도 한 그는 모차르트와의 갈등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다. 가장 큰 요인은 러시아의 대문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희곡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에서 근거 없는 독살설을 다루면서였다. 후대에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에게 열등감과 재능을 질투하는 인물로 굳혀진다. 학자들은 살리에리보다 모차르트의 질투가 더 심했다고 연구한다. 모차르트가 남긴 편지에는 살리에리의 원망과 뒷담화가 많았고, 오히려 살리에리는 오랜 궁정작곡가로 부와 명예 그리고 존경을 받았다. 재능 있는 음악가들을 무료로 수업을 해주고, 노년에 들어서는 자신의 곡이 유행에 못 따라간다며 스스로 일선에서 물러나며 박수받으며 떠난다.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싫어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음악적 재능 때문이 아니라, 모차르트와 성격적으로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차르트의 사망 후, 살리에리는 말년에 치매로 '내가 모차르트를 죽였다'라며 말한다. 온전하지 못한 정신으로 한 이 말은 후대에 지나친 열등감과 시기와 질트의 심리를 통칭하여 '살리에리 증후군'으로 불려지게 된다. 

기록에 따르면 모차르트는 빈 외곽의 마르크스 묘지에 묻힌다. 그는 중산층의 일반적인 장례 풍습대로 합장되어 그의 시신을 다신 찾을 수 없게된다. 아내 콘스탄체는 남편의 작품들을 출판하며 경제적인 성공을 거둔다. 그녀의 새 남편 니콜라우스 폰 니센과 모차르트의 전기를 남기기도 한다. 

피가로의 결혼

대본가 로렌초 다 폰테의 대본을 기초로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앞서 보마르셰의 3부작 중 하나였기에, 당시의 귀족 문화의 조롱과 풍자 때문에 빈에서는 공연 금지가 된다. 당시의 상황은 프랑스 시민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이었고, 계몽주의 사상이 전 유럽을 휩쓸고 있다. 주인공 피가로는 백작의 하인이었음에도 그의 지능과 기지로 백작을 당황하게 한다. 베토벤은 이 작품을 두고 '진정한 혁명의 작품'이라고 하기도 한다. 신분이 이미 정해진 운명이라고 믿었던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파격적인 내용이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결혼'이라는 선택을 중심으로 서사된다. 당시의 결혼은 사회적 계급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였다. 피가로의 약혼자인 수잔나도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는 의지가 매우 강하게 묘사된다. 피가로와 수잔나는 우리의 출생이 우리의 운명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같이한다. 이 작품의 전 이야기인 '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 백작의 사랑을 믿고 결혼한 로지나는 자신의 하녀에게 추파를 던지는 백작을 보고 그저 슬퍼만 한다. 사랑해서 결혼을 하지만 그다음의 이야기는 늘 행복만 가득하지 않았다. 백작은 사랑을 소유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로지나는 다시 회복을 원한다. 로지나의 사랑 회복과 피가로와 수잔나의 결혼 지키기는 하나의 목표가 되고, 백작을 꼼짝 못 하게 하는 계획을 세운다. 결국 백작은 로지나에게 용서를 구하고, 로지나는 용서를 구한다. 이 모든 장면이 귀족들과 상류층에게는 매우 불편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여성이 남성을 용서하며, 하인들이 주인을 조정하는 마지막 장면은 권력을 뒤집는 혁명 같은 장면이다. 

변화

우리는 변화에 얼마나 준비되어 있을까? 변하지 않을 것이라 굳게 믿었는데, 변화에 당황하는 나를 발견할 때,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할까? 무너지는 질서에는 반드시 새로운 세상이 밀려오고 우리는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의 준비가 되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변화에 대한 개념은 무엇일까? 옛말에 '절대 장담하지마라'라고 했다. 사회는 변하고 인간관계도 변하고 나도 변한다. 변화를 선택하기도, 변하지 않기를 선택하기도 한다. 어느 것도 정답은 아니다. 결국 변화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그 변화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가 더 중요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