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한국에서 초연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마리아'를 보고 왔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곡가이자 반도네온 연주자였던 그는, 탱고 5중주단 '킨테토 누에보 탱고'를 결성하고 아르헨티나의 탱고 시대를 열었고, 탱고의 혁명가로 불린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는 반도네온을 선물하며 탱고를 익히라 권유받았지만, 뉴욕에 살면서 피아노와 클래식에 더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결국 탱고라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피아졸라에게 클래식 작곡을 가르쳤던 선생님은 그에게 '너의 음악 안에 탱고가 있다'며 말할 정도로 그의 핏줄에는 탱고가 가득했다. 그 이후, 탱고를 부수고,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며 '탱고 누에보(새로운 탱고)'를 만든다. 보수적인 탱고인들은 그를 탱고를 죽인 사람이라 부르기도 했지만, 그는 죽인 것이 아니라, 진화 시킨 것이다. 그 진화는 오페라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마리아'에 담겨있다.

한국 초연작을 연출한 임선경 연출은 필자의 지인으로 연극과 오페라를 넘나들며 새로운 해석을 해내는데 훌륭하다. 이번 한국 초연도 그래서 기대가 컸다. 공연 장소는 구로창의센터로 블랙박스 소극장이었다. 일반 공연 무대를 올리기보다 실험적인 무대를 올리는 곳으로 어떤 무대가 그려졌을지 궁금했다. 임선경 연출과 신재희 무대디자이너는 이 공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공연은 불친절한 공연이다.' 이 말은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구조나 내용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거나 알게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 점이 더 매력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고 마지막엔 '?' 물음표만이 남는다며 끝나고 보자고 했다.
역시 공연이 끝나고 그 어떤 결론과 명확한 구조와 내용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물음표만 수두룩하게 머리카락에 달려있었다. 서사는 없지만 장면 속의 탱고 음악은 새로운 것을 접한 두근거림은 분명히 남았다. 탱고는 남미의 항구 노동자 계층 그리고 이민자들 사이에서 탄생한 음악으로 고급스러움은 없지만 음악의 깊이는 깊은 음악이다. 강렬한 리듬과 갑작스러운 정지, 우울하면서도 관능적이고 순간의 행복보다 지난 것을 기억하는 음악이라 하는 감정을 느끼게 한다. 춤도 그렇다. 두 사람이 추는 춤은 가장 가깝게 추지만 하나가 되지 않고, 끊임없이 밀고 당기는 움직임이 특징이다. 서로의 기억과 상실을 주고 받지만 하나가 되지 않는 것이다.
피아졸라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라는 하나의 도시를 말하고, 하나의 몸(마리아)을 통해 역사를 노래하고, 하나의 노래(탱고)를 통해 철학을 한다. 주인공 '마리아'는 가난과 폭력, 욕망에 뒤엉킨 사람 혹은 도시를 상징하며 불안한 음악에 고백을 담는다. 연출가 임선경은 그 불안함을 배우들을 객석까지 움직이게 만들며 경계를 무너뜨리며 강렬한 조명과 붉은 천을 사용했다. 무용수의 무용으로 장면의 전환과 의미를 뚜렷하게 하며 모호한 내용에 주석을 달아주는 듯 했다.
그녀의 이름은 성녀 '마리아'와 같지만, 그녀의 인생은 그렇지 못하다. 그녀는 도시의 모든 아픔을 그녀의 몸으로 겪으며 죽음을 맞이하지만 다시 부활하며 경계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된다. 신성함과 세속성, 순결과 타락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구원과 죄는 누가 판단하는가의 질문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순환이다. 예술과 도시, 그리고 인간의 기억이 가지는 영원성에 대한 선언이다. 사람은 떠나도 노래는 남고, 육체는 사라져도 리듬은 계속 흐른다. 마리아는 그래서 죽지 않는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의 도시에서, 누군가의 슬픔과 사랑과 욕망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바로 그렇다. 이민자들의 도시, 부와 빈곤의 공존, 낮과 밤이 다르며, 낭만과 폭력이 공존하는 도시다. 탱고가 그렇고, '마리아'가 그렇다. 도시는 사람을 삼키지만, 동시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그 기억은 계속 돌고 돈다. 그저 그 도시에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오페라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마리아'에서 마리아는 곧 피아졸라이며, 부에노스 아이레스이자, 탱고이다. 세 존재가 하나로 겹쳐지는 순간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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