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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도시 인문학 24 - 레이캬비크, 불과 얼음의 경계의 도시

by Polymathmind 2025. 12. 6.

한 때,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 열풍이 불었다. 한인 팝업 식당이나 벌칙으로 이 곳에 가는 프로그램들이 '레이캬비크' 열풍을 주도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나라와 자연 그리고 사람들은 충분한 매력을 가졌다. 전 세계의 수도 중 가장 북쪽에 있는 '레이캬비크'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리스트 순위 안에 들었을 것이다. 화산섬인 특성을 이용해 지열을 통한 난방을 하는 친환경 도시로도 유명하다. 왜 이곳이 사랑을 받는 곳이 되었는지, 무엇이 우리를 이곳으로 이끄는지 생각해보자.

이 도시는 ‘불과 얼음의 땅’이라 불리는 아이슬란드의 자연 조건 위에 형성되었으며, 인간이 자연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철학적 답변처럼 존재한다. 차가운 바다와 빙하, 그리고 그 아래에서 끓어오르는 뜨거운 지열 에너지가 한 공간 안에서 공존하는 이곳은, 삶의 조건 자체가 이미 하나의 철학이 된다.

‘연기의 만’ 혹은 ' 연기의 피난처'를 뜻하는 레이캬비크라는 이름은 이 도시의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파괴의 흔적이 아니라 대지의 호흡이며, 인간을 살게 하는 온기의 원천이다. 지열은 도시의 난방과 전력 생산에 쓰이고, 주민들의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이는 자연을 정복하는 기술이 아니라, 자연과 협약을 맺고 살아가는 겸손한 문명의 태도처럼 느껴진다.

도시의 풍경 또한 그러하다. '레이캬비크'에는 높게 치솟은 건물이나 과시적인 건축물이 거의 없다. 대신 바다와 하늘, 빙하와 산을 가리지 않도록 설계된 낮고 담백한 건물들이 조용히 자리를 지킨다. 그 가운데 우뚝 선 '할그림스키르캬 교회'는 아이슬란드 특유의 현무암 기둥을 닮은 형태로, 인간이 자연을 모방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그러나 그 위엄은 지배가 아니라 경외에 가깝다. 이곳에 서면 인간이 만든 구조물마저도 결국 자연의 일부임을 인정하게 된다.

'레이캬비크'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고요’다. 길고 어두운 겨울과 끝없이 이어지는 밤은 사람들을 침묵 속으로 이끈다. 그러나 이 침묵은 공허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인지 아이슬란드는 인구 대비 문학가가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이며, '레이캬비크'는 유네스코 ‘문학 도시’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곳의 예술가들은 광활한 자연과 고독 속에서 자신만의 언어를 길어 올린다. 음악과 문학은 이 도시에서 생존의 방식이자 정신을 지탱하는 기둥이 된다.

이 도시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근본적이다. 인간은 어디까지 자연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 문명이란 끊임없는 확장과 소비만을 의미하는가. '레이캬비크'는 말없이 대답한다. 더 높이, 더 빠르게가 아니라, 더 깊이, 더 조심스럽게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발전일 수 있다고. 자연 앞에서 자신이 작음을 인정하는 순간, 인간은 오히려 더 큰 세계와 연결된다는 사실을 이곳은 조용히 증명한다.

'레이캬비크'는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는 가장 본질적인 물음들이 살아 숨 쉰다. 그래서 이곳은 여행지가 아니라 사유의 장소이며, 관광의 도시가 아니라 성찰의 도시다. 불과 얼음이 공존하는 이 경계의 땅에서, 우리는 비로소 인간다운 속도로 숨 쉬는 법을 배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