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미국에서 방영된 SF 공포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는 올해 말과 내년 초까지 시즌 5를 방영한다. 1980년대 배경으로 레트로 감성을 느끼게 해주는 요소들을 담고 있다. 현재 넷플릭스를 시작하게 해준 대표작(수입 1.4조)으로 평가받고 있다. 내용의 구성과 긴장감, OST와 영상미까지 웰메이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실 한국에서는 그렇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매우 흥미로 점은 2016년 시작한 아역들과 배우들이 내용상 죽거나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 출연한다는 것이다. 참고로 이 드라마 시리즈는 10년째 찍고 있다. 아역들이 자라나는 것을 시청자들이 그대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역변하는 아이들을 보면 조금 힘들긴하다.

뒤집힌 세계 (Upside Down)의 구조
한 사람이 사라지는 순간, 세계는 더 이상 이전의 세계가 아니다. 넷플릭스의 '기묘한 이야기'는 바로 그 ‘사라짐’에서 시작한다. 작은 마을 호킨스에서 벌어진 한 소년의 실종 사건은, 단순한 실종을 넘어 우리가 믿고 있던 현실에 균열이 생겼음을 알리는 신호가 된다. 이 균열은 곧 ‘업사이드 다운(Upside Down)’이라는 또 다른 세계의 등장을 통해 시각화되며, 드라마는 그 틈 사이로 인간의 두려움, 욕망, 기억, 그리고 우정의 본질을 드러낸다.
이 작품의 서사 구조는 고전적인 서사 형태를 따른다. 누군가가 사라지고, 남겨진 자들이 그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며, 그 과정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세계와 마주하게 되는 구조이다. 이것은 신화 속 영웅들의 여정과 닮아 있고, 동시에 현대적인 성장 서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특별한 점은 이 여정을 이끄는 주체가 ‘어른’이 아니라 ‘아이들’이라는 사실이다. 어른들은 대부분 정부와 체제, 혹은 자신의 두려움에 갇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 반면, 아이들은 설명할 수는 없어도 ‘이상함’을 감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 감각을 믿고 끝까지 나아간다. 여기에서 이 작품은 진실에 가까워지는 길은 지식이 아니라,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 감각에서 시작된다고 말하는 듯하다.
‘업사이드 다운’은 이 작품의 가장 상징적인 공간이다. 표면적으로는 또 다른 차원, 혹은 괴물이 존재하는 공간이지만, 그것은 단순한 ‘다른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억압해온 세계의 그림자에 가깝다. 모든 것이 현재의 세계와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되, 생명력이 사라지고, 빛이 사라지고, 숨조차 쉬기 힘든 공간. 그것은 마치 인간의 무의식과 트라우마, 혹은 칼 융이 말한 ‘그림자’의 세계를 연상시킨다. 우리는 살아가며 감당하기 힘든 감정,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 받아들이기 어려운 진실을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둔다. 그러나 묻힌 것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존재를 계속한다. ‘업사이드 다운’은 바로 그 억압된 세계가 시각적으로 구현된 공간이다.
이 두 세계를 연결하는 인물, 일레븐(El)은 경계 위에 선 존재이다. 그녀는 실험에 의해 만들어진 아이이며, 인간과 비인간, 통제와 자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서 있다. 그녀는 업사이드 다운의 문을 여는 열쇠이자, 동시에 그것을 닫을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다. 이는 곧, 문제의 원인이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구조와 폭력에 있다는 깊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괴물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 답은 언제나 ‘저 너머’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
'기묘한 이야기'가 단순한 장르물을 넘어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이 작품이 결국 공포가 아닌 ‘연대’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괴물을 물리치는 것은 혼자의 영웅이 아니라, 서로를 믿고 손을 잡는 친구들이다. 그들은 반복해서 상처받고, 잃고, 두려워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의 우정은 무기보다 강하고, 과학보다 진실에 가깝다. 이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괴물이 아니라, 혼자 남겨지는 상태가 아닐까.
우리는 모두 하나의 세계만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두 개의 세계를 동시에 안고 살아간다. 하나는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곳이고, 다른 하나는 말하지 못한 감정과 기억, 사회가 숨긴 진실이 쌓여 있는 내면의 세계다. 그리고 어떤 순간, 상실이나 고통 혹은 예술적 경험을 통해 그 두 세계 사이에 균열이 생긴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뒤집힌 세계’와 마주한다. '기묘한 이야기'는 바로 그 순간을 장르의 언어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결국 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다. 진짜 용기는 괴물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외면하던 세계와 마주하는 것이며, 그 세계를 혼자가 아니라 함께 견뎌내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공포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고, 성장 이야기이며, 무엇보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깊은 질문이다.
‘업사이드 다운’은 먼 다른 차원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가 매일 들여다보지 않으려 애써온 자신의 내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들려오는 기묘한 소리는 이렇게 속삭인다.
“당신은 정말 이 세계의 모든 것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인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도시 인문학 24 - 레이캬비크, 불과 얼음의 경계의 도시 (0) | 2025.12.06 |
|---|---|
| 영화 '매트릭스' - 우리는 깨어있는가? (0) | 2025.12.05 |
| 우리가 잃어버린 것 16 - 질문 (0) | 2025.12.03 |
| 민족주의 음악가 - 안토닌 드보르자크, 음악으로 쓴 기억과 정체성 (0) | 2025.12.02 |
| 우리 시대엔 참된 스승(진정한 리더)이 있을까? (0) | 2025.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