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학

오페라 '리골렛또' - 인간의 욕망, 저주의 반복

by Polymathmind 2025. 1. 27.

오페라 '리골렛또'

주세페 베르디의 3막 오페라로 빅토르 위고의 희곡 '왕은 즐긴다 Le roi s'amuse'을 기초로 작곡한다. 베르디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로 세계 각지의 유수 오페라 극장에서 사랑받는 작품들이 많다. 그중 리골렛또는 베르디가 37살에 작곡한 작품인데, 단 40일 만에 작곡한다. 초연은 대성공이다. 하이마트 광고 음악으로도 익숙한 '여자의 마음' 테너 아리아는 극비리에 초연 전날에 악보를 준다. 그 이유는 베르디의 작품들이 초연도 하기 전에 유출되어 길거리에서 흥얼거리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이탈리아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오페라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작곡가로서 애국심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을 작곡하기 때문이었다. 최대의 걸작은 이탈리아의 애국시인 알레산드로 만초니의 죽음을 애도하여 쓴 '레퀴엠'이다. 그는 이탈리아의 오페라 전통을 살리면서 오케스트라와 연극적인 요소를 극대화시키며 이탈리아 오페라의 이상적인 양식을 완성시킨다. 음악의 진행으로 인간의 감정과 극적 상황을 표현하며 이탈리아의 소리 중심의 오페라를 접목시킨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검열이 심했다. 원작의 제목을 봐도 왕의 비판적인 요소들이 즐비했다. 베르디가 표현한 왕의 모습은 절반도 안된다고 보면 된다. 빅토르 위고의 원작에서는 대부분 실존인물들이었다. 오페라 작품에서는 시대적 배경과 인물을 가상으로 교체하면서 초연 허가를 받는다. 윗선을 비판하는 것을 비극으로 전환하면서 작품의 내용은 폭넓어지는 효과도 본다. 더욱이 3막에 나오는 4 중창을 본 빅토르 위고는 '내 연극에서도 오페라처럼 네 명이 동시에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며 감탄한다. 그 이유는 4명의 성악가가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하는데 하나의 음악으로 뭉쳐지게 들린다. 장면의 극적인 분위기는 퍼지지 않으며 관객의 귀와 눈을 한 번에 사로잡는다. 이것이 소리 중심의 음악을 극에 녹여 들게 하는 베르디의 작곡 기술이다. 

리골렛또 초연 포스터

인간의 욕망

첫 장면부터 인간의 욕망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어떤 윤리도, 도덕적인 규범도 없는 장면과 대사로 인간의 본능적 충동을 억제할 수 없는 상태의 인간 한 명을 보여준다. 자신을 사랑한 어느 한 인물의 끝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주변에도 그에게 동조하는 혼란스러운 인간들이 둘러싸고 있다. 그것은 권력으로 어떤 도덕적 책임을 지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 절대화에 자신들을 던져놓은 바닥 인간들의 군상이다.

그 군상 중, 리골렛또는 그들에게 이용당하고 동조하는 듯 보이나, 자신의 딸을 보호하려는 본질적 생존과 소유의 욕망을 보여준다. 그리고, 딸을 유린한 권력자와 그 동조자들에 대한 복수의 욕망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리골렛또의 욕망들은 딸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변질되어 고통으로 돌아온다. 

딸인 질다는 권력자에 대한 사랑이 자신의 목숨을 앗아가는 꺾인 욕망을 드러낸다. 자신이 유린당한 것을 알면서도 자신을 희생하여 그를 살려내는 것은 순수해 보이지만 매우 파괴적이다. 흔히 질다를 보며 아가페적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타인에 대한 사랑이 너무 의존적이면 사랑이란 이름으로 비극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인간의 욕망을 자신을 사랑하는 지점에서 시작하거나, 남을 사랑하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제어가 되지 않을 경우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은 물리적인 경계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각가가 생각하는 사랑의 기준이 다르다. 혹시 그 기준이 없을 수도 있겠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사랑은 무엇인가? 나의 사랑 때문에 누군가가 불행할 수 있다는 생각도 분명해야 할 것이다.

저주의 반복

오페라 초반에 한 노인 백작이 리골렛또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하지만 리골렛또는 그의 저주의 외침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 외침은 오페라 가장 마지막 장면에서 리골렛또가 노인 백작처럼 피를 토하며 울부짓으며 마친다. 그렇다. 저주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운명과 파멸의 힘을 가진 에너지이다. 초반의 노인 백작의 운명이 리골렛또의 운명이 되며 리골렛또는 그 운명을 자신의 힘으로 바꿔보려하지만 그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운명을 벗어나려했지만 오히려 더 깊은 운명의 굴레로 빠져들었던 모습이 교차된다. 과연 인간의 자유의지로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것일까? 

노인의 저주는 외부의 힘이었다. 하지만 그의 운명은 결국 자신의 불안과 공포로 굳어진다. 내면의 힘의 작용이 바깥으로 드러나며 리골렛또가 이 상황들을 심판하려는 행동으로 드러난다. 그 저주가 현실이 될까 두려움과 자신이 이 모든 상황을 심판 할 수 있다는 '교만'이 저주의 끝을 달리게 한다. 베르디는 음악적으로도 그 반복성을 표현한다. 노인 백작의 모티브는 낮고 음산한 선율로 작품 전체에 등장하며, 노인 백작이 했던 '저주'라는 단어는 리골렛또 자신이 계속 반복하며 작품을 관통한다.

결국 저주의 끈은 비극으로 마무리되면 끝이 났을까? 리골렛또는 그 저주에서 벗어났을까? 그들의 운명은 그들이 선택한 것인가? 아니면 이미 정해진 것인가? 

오페라 '리골렛또'는 인간의 욕망과 죄책감, 그리고 도덕적 갈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역사의 조건 중 하나는 '반복'이었다. 우리의 삶의 조건도 '반복'이다. 과거는 바꿀 수 없겠지만 현재에 무엇을 선택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의 선택과 행동이다. 오이디푸스와 리골렛또가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올바른 선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간의 본성과 삶의 본질을 알지 못한다면 그 선택의 기준이 없을 터이고, 그것을 행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 때로는 올바른 선택을 위해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  - 네이선 모리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