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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오페라 '라인의 황금' - 바그너 링(반지) 시리즈, 보이지 않는 권력

by Polymathmind 2025. 12. 16.

몇 주전, 국립 오페라단과 서울시향의 협업으로 바그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공연되었다. 대략 6시간(휴식포함)의 공연은 대한민국에서는 처음 경험하는 공연이었다. 많은 오페라 매니아들은 즐거워했다. 쉽게 볼 수 없는 작품을 한국에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었다. 그리고 바그너의 '링' 시리즈에 기대를 하게 되었다. 물론 '링' 시리즈를 전혀 공연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하는 기대감이다. 바그너의 '링(반지)'시리즈를 미리(?) 다뤄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겠다.

1848년 유럽 전반에서 일어난 혁명이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대혁명(1789-1799) 부터 이어진 '프랑스 2월 혁명'과 영국 산업혁명 이후의 자유주의 혁명 그리고 독일의 봉건체제 타파 혁명 등 큰 혁명의 물결이었다.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성격을 띠었고, 독립을 원하는 민족들의 목표가 뚜렷했다. 하지만 크게 성공을 못한 혁명으로 남았다. 젊은 바그너는 이 혁명에 직접 가담한다. 혁명은 실패했지만 그는 자신의 작품으로 투쟁의 공간을 옮겼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니벨룽의 반지'이다. 4개의 작품이 하나의 서사로 고대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의 전설집 '사가'와 중세 독일의 영웅 서사시 '니벨룽의 노래'에 기초하여 창작되었다. 바그너는 1848년부터 1874년까지 약 26년에 걸쳐 대본과 작곡을 했다. 4개의 작품의 총 연주시간은 16시간으로, 그 중에 첫 작품이 '라인의 황금 Das Rheingold)' 다. 

오페라 '라인의 황금'

'라인의 황금'은 이야기의 시작이 아니다. 이 작품은 이미 파국이 예정된 원인을 보여주는 오페라다. 바그너가 이 작품을 ‘제1부’가 아니라 전야(Vorabend)라고 명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라인의 황금'에서는 영웅도, 구원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바그너는 단 하나의 질문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 질문은 바로 '권력은 어떤 선택에서 시작되는가?'이다.

오페라는 라인강의 깊은 물속에서 시작된다. 라인강의 처녀들이 지키는 황금은 아직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것은 소유되지 않았고, 교환되지 않았으며, 욕망의 대상조차 아니다. 이 세계에는 법도, 계약도, 지배도 없다. 황금은 자연의 일부로서 노래와 유희 속에 놓여 있다. 바그너는 이 장면을 통해 인간 이전의 질서, 혹은 인간이 상실한 세계를 제시한다. 여기서 황금은 아직 힘이 아니라 가능성에 가깝다.

그러나 알베리히가 등장하는 순간, 세계는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기울어진다. 그는 황금을 얻기 위해 사랑을 저주한다. 이 선택은 단순한 개인적 타락이 아니다. 바그너에게 이 장면은 문명의 탄생 장면이다. 사랑을 포기해야만 얻을 수 있는 힘, 관계를 끊어야 획득 가능한 지배. 권력은 언제나 어떤 결핍 위에서만 성립한다는 사실을 바그너는 이 한 장면으로 압축한다.

이후 황금은 반지로 주조된다. 이는 결정적인 전환이다. 황금이 반지가 되는 순간, 그것은 자연의 물질에서 추상적 권력으로 변한다. 반지는 눈에 보이지만, 그 힘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모두가 그 힘을 믿는 순간, 세계는 실제로 움직인다. 이 구조는 법과 계약, 그리고 자본의 작동 방식과 정확히 겹친다. 바그너는 이미 19세기에 보이지 않는 믿음이 현실을 지배하는 세계를 예감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황금의 논리에서 신들조차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이다. 신들의 왕 보탄은 도덕적으로 알베리히보다 우월해 보이지만, 실상 그는 계약에 묶인 존재다. 그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약속을 지키고, 그 약속 때문에 더 큰 폭력을 필요로 한다. 바그너는 이를 통해 분명히 말한다. 비극의 원인은 악한 개인이 아니라, 일단 작동하기 시작한 시스템이라고.

오페라의 마지막 장면에서 신들은 발할라에 입성한다. 음악은 웅장하고 장엄하지만, 이 장면은 결코 승리로 읽히지 않는다. 라인의 처녀들은 황금을 돌려달라 울부짖고, 관객은 이미 이 세계의 결말을 알고 있다. 바그너는 이 장면을 통해 문명의 시작이 곧 파멸의 서막임을 암시한다. 발할라는 완성된 이상향이 아니라, 붕괴를 향해 천천히 기울어진 구조물이다.

오페라 '라인의 황금'은 그래서 불편한 오페라다. 이 작품은 누구도 영웅으로 만들지 않고, 누구에게도 면죄부를 주지 않는다. 바그너는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얻기 위해 사랑을 포기했는가. 그리고 그 선택이 만든 세계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는 있는가.

이 질문 때문에 오페라 '라인의 황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재형이다. 이 오페라는 신화를 노래하지만, 그 신화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기원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