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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영화 '애드 아스트라'- 우주 탐사, 숙명, 페르미 역설

by Polymathmind 2025. 2. 12.

애드 아스트라

2019년, 브래드 피트 주연의 'Ad Astra'가 개봉한다. 제목은 라틴어로 '별을 향하여'라는 뜻이다. 스펙터클한 전개는 아쉬운 점이 있으나, 인간의 감정과 고독 그리고 사랑에 대한 심리 묘사에 집중한 영화이다. 약간 영화 '그래비티'가 떠오른다. 어느 정도 우주에 대한 고증이 이뤄졌지만, 아쉬운 부분이 생각보다 많다. 영화의 배경은 가까운 미래인데, 지구에서 달까지 가는 거리에 비해 시간이 매주 짧게 설정되고, 심지어 화성까지 가는데 2주, 해왕성까지 가는데 79일 설정은 과도했다. 현재 기술로는 화성까지 7개월, 해왕성까지 약 3년 9개월 걸린단다. 이렇게 과학적 고증을 따진다면 허술한 부분이 여러 가지다. 하지만, 흥미로운 설정은 주인공 브래트 피트의 아버지가 지적 생명체를 찾기 위해 떠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부분도 허점 투성이다. 그러나 질문은 던질 수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본 우주 안에 생명체는 우리뿐인가? 아니면 그들이 존재하는가? 의 질문이다. 왜 그의 아버지는 지적 생명체 발견에 집중했을까? 그것이 인류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 들었다. 영화에서 우주를 '없음'으로 표현한다. 브래드 피트가 만나는 사람들은 극히 소수며 해왕성까지 갈 때는 아무도 없다. 그는 79일간의 여정에서 무엇을 찾았을까?

역경을 넘어 별을 향해

숙명

고대 인류가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 머리로만 상상했던 우주와 지금 우리가 보는 우주의 크기는 너무 다르다. 우주를 더 멀리 바라보면 볼수록 우리는 과거를 보는 것이고, 그 크기는 계속 팽창하고 있어 끝이 없다. 그 끝으로 가면 우주의 시작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인류는 이제 우주로 나가야 하는 숙명을 가진다. 지구가 병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주 탐사는 상업적, 정치적이 아닌 숙명이 될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인간의 지속 가능성을 찾아야한다. 이 영화에서는 지적 생명체를 찾으러 떠난 설정에 결국 자기 자신만 남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해왕성까지 가서 지적 생명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브래드 피트의 아버지는 드레이크 방정식(외계 문명이 존재할 확률을 계산한 방정식)을 이야기하며 불확실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광활한 우주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우주로 나가는가? 이 우주에 우리밖에 없다면? 우리의 존재는 어디서 온 것일까? 

페르미 역설

만약 그들이 존재한다면, 왜 만나지 못할까? 이것이 '페르미 역설'이다. 일단 너무 크다. 커도 너무 크다. 너무 멀어서 그들과 만나기 어렵다. 또는 이미 멸망, 멸종했을 가능성도 있다. 아니면 아직 우리의 기술력이 너무 낮아서 관찰하거나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없을 수도 있다. 어떤 과학자들은 그들이 이미 우리를 관찰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마치 개미에게 말 걸지 않는 것처럼... 

NASA는 목성의 위성인 유로파, 토성의 위성인 엔셀라두스, 화성의 지하에서 생명체의 흔적을 찾고 있다. 제임스 웹은 외계 행성의 대기를 분석하고 있다. 지적 외계 생명체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미생물이라도 발견하면 인류 역사의 큰 발견이 될 것이다. 

앞의 질문을 다시 해보자. 우리가 우주에서 유일한 존재라면? 생명체가 생겨나는 조건이 수만가지의 우연이 하나씩 순서대로 정확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 우연이 지구에서만 일어나고, 그 우연이 지금의 나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이뤄나가는 이 모든 것은 우주에서 유일한 역사와 문화가 되는 것이고, 나도 유일하다는 것이다. 단순히 하나의 인간이 아니라, 우주의 기억 혹은 역사인 것이다. 우주의 먼지 같아 보여도 우리는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야 하는 위대한 존재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예술, 과학, 철학 등이 우주의 의미를 가지게 하는 과정일 수 있다.

영화 '애드 아스트라'에서는 바로 그것을 말한다. 브래드 피트의 고독한 우주 탐사를 통해 우주에는 나밖에 없고 나를 다시 찾는 과정이었음을 깨닫는다. 사소한 것에 감사와 가까운 사람에게 사랑을 더 주며 살겠다는 그의 독백은 아주 간단하며 누구나 다 아는 진리이다. 그리고 늘 진리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