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
2023년 12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이 영화는 루만 일람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현대 사회의 불안과 인간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단순한 재난 영화로 보일 수 있지만, 사이버 테러로 인한 국가위기 사태로 인간의 욕망에 의한 자업자득을 이야기한다.
재난과 존재
영화의 시작은 문명의 껍질이 서서히 벗겨지는 과정이다. 전력망의 정지, 네트워크의 두절, 해변을 뚫고 선 유조선이 모든 것은 기술에 의존하던 인간이 근원적인 불안정한 존재 상태에 놓였음을 암시한다. 이 영화는 문명의 사라진 순간을 보여준다. 모든 체계가 무너진 뒤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의 질문을 하게 된다. 우리가 신뢰하던 문명이 무너지고 인간은 나를 잊을 정도로 혼란하고 두려워질 것이다. 하지만 이때, 진정한 나를 만난다. 한없이 작고 약한 존재인 진정한 나를 대면하는 순간을 묘사한다.
불신
줄리아 로버츠가 연기하는 아만다는 집주인이라 주장하는 낯선 흑인 남성과 그 딸을 마주하며, 자연스레 불신과 경계심을 드러낸다. 영화는 이 대립을 통해 미국 사회의 인종적 긴장, 계급 간 단절, 타자성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낸다. 에마뉘엘 레비나스가 강조했던 나와 다른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윤리는 이 극한의 상황에서 시험받는다. 재난은 개인의 도덕성을 검증하는 무대가 되며, 인간성은 그 안에서 가장 민낯으로 드러난다. 문명을 껍질이라 한다면, 껍질이 무너지기 전에 불신이라는 전조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가장 위험한 적은 내부에 있다는 말처럼 말이다.
회복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루스(줄리아 로버츠의 딸)가 혼자 폐허가 된 저택에 들어가 '프렌즈' DVD를 재생하는 순간이다. 아무도 남지 않은 공간, 무너진 문명 속에서 그녀가 찾은 것은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다. 그것은 질서, 웃음, 사람 간의 유대, 그리고 문명이 작동하던 세계에 대한 기억이다.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는 말한다. 기억은 단지 과거를 추억하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무너진 현실 위에 다시 세계를 세우기 위한 첫 벽돌이다. 문명이 멈췄을 때 살아남는 것은 최신 기술도, 국가도 아닌, 서로를 기억하는 마음이다. 루스의 미소는 생존의 안도감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믿음의 표현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늘 우리의 기억에서 시작된다.
기억은 부서지지 않는다. 기억은 언어보다 오래 남고, 기술보다 깊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기억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는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억, 우리가 힘든 현실로 인해 덮어버린 그 작은 기억이 무너진 나와 문명을 다시 회복하는 열쇠임을 보여준다. 그 열쇠는 정체성의 흔적이고, 생존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인간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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