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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도시 인문학 21 - 카이로, 하늘과 인간 사이의 도시

by Polymathmind 2025. 11. 4.

나일강의 푸른 흐름과 사막의 황금빛 모래가 맞닿은 곳, 그 경계 위에 카이로가 있다. 이 도시는 인간이 하늘을 향해 세운 기념비이자, 문명과 신앙, 지식이 서로 얽혀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온 거대한 시간의 건축물이다. 카이로를 걸을 때, 우리는 동시에 수천 년의 시간을 걷는다. 파라오의 무덤과 이슬람의 미나렛, 콜로니얼 건축과 현대의 혼잡한 거리까지, 모든 것이 이 도시에 겹쳐 있다. 북아프리카의 수도라는 별명을 지닌 카이로는 아랍 연맹을 포함한 여러 국제기구의 본부가 있다. 요즘 두바이에 밀려난 듯 보이지만 그 위상은 여전하다. 

이집트를 떠올리면 '피라미드'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카이로에서 남서쪽으로 13km 떨어진 '기자'에 '대 피라미드'가 있다. 나일강을 따라 약 1,500km 가 넘는 지역에 흩어져 있다. 대략 3,000년에 걸쳐 300개 이상 지어졌다. '기자'에 있는 '대 피라미드'는 그리스 역사가인 헤로도토스의 '역사'라는 책에 이렇게 언급되고 있다. 10만 명이 3개월 교대로 20년에 걸쳐 지었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하늘로 향한 돌의 노래였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그 너머의 세계를 꿈꾸었다. 피라미드는 신에게 닿고자 하는 건축이자, 불멸을 향한 인간의 도전이었다. 그 완벽한 기하학은 단순한 묘가 아니라, ‘영원을 향한 사유’의 형태였다. 이 피라미드의 정점에서 인간은 자신이 신의 일부일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품었고, 바로 그 믿음이 문명을 낳았다.

시간이 흘러 카이로는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는다. 이슬람의 확장과 함께 세워진 모스크들은 하늘을 향해 솟은 미나렛(예배당 탑)으로 다시금 인간의 시선을 위로 이끈다. 그러나 이번에는 돌이 아니라 소리가 신에게 닿는다. 하루 다섯 번(살라), 무에진(기도 선포자)의 목소리가 도시를 덮을 때, 카이로는 거대한 기도의 합창장이 된다. 신앙은 피라미드의 침묵 대신, 언어와 리듬을 통해 존재를 확장했다. 다섯 번의 기도는 종교적 의무가 아닌 신과 연결하는 '삶의 리듬'이다. 신이 부여한 이 시간을 다시 신에게 되돌리는 순간이며 겸손과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자각 그리고 '메카'를 향한 인간의 평등을 나타낸다. 이 시간에는 왕도, 거지도 모두 이마를 땅에 대고 기도하니까. 

이 신앙의 중심에는 '알 아즈하르 대학교'가 있었다. 천 년의 역사를 지닌 이 학교는 ‘지식은 신의 뜻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라는 신념 아래 예배당으로 세워졌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학문은 단순한 신학이 아니라 철학, 수학, 의학까지 아우르는 지적 인문주의의 요람이었다. 이미 고대 그리스 철학을 아랍어로 번역하여 연구하였고, 서양이 르네상스를 준비하던 시기, '카이로'는 벌써부터 이성과 신앙의 조화를 실험하고 있었다. 인간의 이성이 신의 질서 속에서도 살아 있을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카이로의 정신, 바로 사유의 도시었다.

그러나 역사는 언제나 단일하지 않다. 기원전 7세기, 앗시리아 제국의 침략부터 페르시아, 알렉산더 대왕, 로마 제국의 편입, 몽골, 오스만등 수많은 문명들에게 정복당한다. 하지만 '카이로'는 매번 부활한다. 19세기 이후 나폴레옹과 영국의 식민지화는 카이로의 풍경에 또 하나의 얼굴을 남겼다. 유럽식 건축물들이 나일강변에 세워지고, 영국의 행정 언어가 알 아즈하르의 아랍어 위에 겹쳐졌다. 도시의 중심은 서구의 근대적 질서로 채워졌고, 오래된 골목의 종교적 시간은 그 그림자 아래로 물러났다. 하지만 카이로는 침묵하지 않았다. 침략을 흡수하며 이 도시는 늘 기억의 도시로 살아남았다. 피라미드는 여전히 모래 속에서 시간을 응시하고, 모스크의 미나렛(예배당 탑)은 여전히 신의 이름을 부른다.

오늘날 '카이로'는 모순의 도시다. 혼잡한 교통, 불평등, 빠른 도시화 속에서도 여전히 하늘을 향한 시선이 남아 있다. 이곳의 사람들은 신을 믿으면서도 시장에서 치열하게 흥정하고, 고대의 무덤 옆에서 휴대폰을 든다. 마치 신의 도시와 인간의 도시가 서로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처럼 그들의 일상 속에는 ‘영원’과 ‘현재’가 공존한다. 

'카이로'는 질문한다. '우리는 무엇을 남기는가?'

피라미드의 돌, 모스크의 목소리, 혹은 잊히지 않는 기억의 습작들, 이 모든 것은 인간이 하늘을 바라보며 자신을 이해하려 한 흔적이다. 결국 '카이로'는 ‘신을 닮고자 한 인간의 도시’이자, ‘인간의 불완전함을 기억하는 신의 도시’다. 그곳에서 우리는 문명의 기원을 보고, 동시에 인간의 한계를 본다. 이 곳이 바로 '인문학'의 도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