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리더와 팔로워가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리더는 여전히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방향이 없고, 팔로워는 넘쳐나지만 책임이 없다. 겉으로는 수많은 리더십 담론이 넘쳐나지만, 정작 ‘누구를 따라야 할지’, ‘무엇을 믿어야 할지’는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리더나 팔로워 자체가 아니라, 그 관계를 지탱하던 신뢰와 공명일 것이다.
과거의 리더십은 권위와 신뢰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다. 리더는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공동체의 방향을 제시했고, 팔로워는 그 권위를 신뢰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지금은 권위만 남고 신뢰는 사라졌다. 정보가 넘치고, 모든 사람이 ‘판단의 주체’가 된 시대에, 리더의 말은 더 이상 진리로 작동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리더의 자리를 바라보며 말한다. “그는 믿을 만한가?” 리더십은 더 이상 직위나 명성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리더는 전문가나 유명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리더는 공감 능력이 필요하며, 듣는 귀가 필요하다. 그리고 지혜와 책임이 필요하다. 리더는 관계 속에서 매 순간 새롭게 증명해야하는 순발력도 필요하다.

우리는 ‘팔로워’라는 단어를 여전히 쓰지만, 그 의미는 달라졌다. SNS에서 ‘팔로우’는 참여가 아니라 구독이고, 연대가 아니라 소비다. 우리는 누군가의 비전을 따르기보다, 누군가의 콘텐츠를 즐긴다. 그렇게 팔로워는 공동체의 일원에서 관객으로 전락했다. 그는 더 이상 ‘함께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멀찍이 떨어져 ‘관찰하는 사람’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승리한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은 영웅으로 칭송받는다. 그러나 '처칠'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단지 국민이 일어나도록 불을 붙였을 뿐이다. 영국을 구한 것은 국민의 용기였다." 이 말은 '처칠'의 겸손을 볼 수 있고, 동시에 팔로워십의 위대함을 나타낸다. 위대한 리더 뒤에는, 늘 위대한 팔로워가 있다. 팔로워가 영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이 단순히 ‘리더의 부재’로만 봐야할까? 아니다. 팔로워의 책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좋은 팔로워는 단순히 따르는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적 책임을 나누는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의 팔로워는 비난만 남긴 채, 스스로의 책임을 회피한다. 리더가 실패하면 “그가 문제였다”고 말하지만, 그 실패를 가능하게 한 침묵과 방관 역시 팔로워의 몫이다. 리더의 부재는 결국 팔로워의 부재와 같은 말이다. 둘 중 하나만 사라진 게 아니라, 서로를 비추던 거울이 동시에 깨져버린 것이다.
리더는 넘쳐난다.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발신할 수 있는 시대, 목소리를 내는 리더는 많지만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는 드물다. 리더십은 ‘영향력’의 문제가 되었고, ‘의미’보다 ‘주목’이 더 중요해졌다. 리더들은 듣지 않고 말이 많아졌고, 행동력과 책임감은 떨어진다. 리더는 있지만, 리더십은 없다. 팔로워는 있지만, 공동체는 없다. 비판을 받을 용기가 없고, 비난만 즐비해진다. 이 현상은 팔로워에게 까지 영향을 미친다. 유명한 인플루언서가 리더처럼 보이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이 시대의 새로운 리더는, 앞서 걷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의미를 만드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팔로워는, 그 의미를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비판적으로 확장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리더와 팔로워의 관계는 더 이상 수직적 구조가 아니라, 서로의 목소리를 울려 퍼뜨리는 공명의 구조로 다시 짜여야 한다.
리더십이란 누군가를 이끄는 기술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회복하는 일이다. 그 지혜를 되찾을 때, 우리는 잃어버린 리더와 팔로워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 만남의 순간, 리더와 팔로워는 서로를 구분 짓는 이름이 아니라, 공동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인간의 또 다른 얼굴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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