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대한민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 등장한다. 봉준호 감독의 블랙 코미디 서스펜스 영화 '기생충'이다. 대한민국에서 천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고, 72회 칸 영화제 공식경쟁부문에 초청, 황금종려상 수상, 그리고 77회 골든 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 각본상과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다. 92회 아카데미 영화제에서는 작품상, 국제영화상, 감독상, 각본상의 4관왕을 달성하며 아카데미 영화제 역대 작품상을 수상한 최초의 비영어 영화로 기록된다.

이미 '설국열차'로 이름 알린 봉준호 감독은 '설국열차' 촬영시 이미 이야기의 구조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영화 '옥자'의 촬영을 마치고 바로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부자와 가난한 자의 계층과 그 속의 인간 욕망을 드러내며 공간에 대한 의미를 풀어낸다.
그가 찾은 해답은 바로 '계단'이다. 수직 구조의 계단과 계단이 많은 집을 배경으로 하며, 땅 위의 집과 지하의 집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며 공간을 미장센으로 사용한다. 위와 아래, 밝음과 어둠, 개방과 폐쇄의 대비는 이 영화의 가장 근본적인 철학적 언어다. 봉준호는 이 단순한 구조 속에 인간 욕망의 본질을 숨겨두었다. 욕망은 언제나 ‘위로’ 향한다. 그러나 그 위로의 움직임은 결코 해방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구속을 낳는다는 의미를 보여주고 싶어했다.
영화 속 김가족은 반지하에 산다. 창문은 절반만 세상 위로 열려 있고, 빛은 바닥 가까이에서 희미하게 스며든다. 그들의 삶은 늘 절반쯤 숨겨져 있고, 절반쯤 드러나 있다. 이 공간은 곧 사회적 경계선이자 존재론적 모호함을 상징한다. 그들은 지상으로 올라가고자 애쓰지만, 지상은 언제나 그들을 완전히 받아주지 않는다. 욕망은 존재를 끌어올리는 듯하지만, 결국 더 깊은 밑바닥으로 끌어내린다.
반면 박가족의 집은 햇살이 가득한 언덕 위의 건축물이다. 넓은 마당과 통유리창은 개방과 자유를 상징하지만, 그 안의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외부와 단절되어 있다. 그들의 삶은 이미 완벽한 듯 보이나, 실은 철저히 ‘안전한 감옥’ 속에 있다. 김가족이 그 공간에 잠시 스며드는 순간, 욕망은 실현된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욕망은 타인의 세계에 ‘기생’하는 일시적 환상에 불과하다.
봉준호의 카메라는 인물들의 욕망을 ‘수직적 이동’으로 시각화한다.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희망의 통로처럼 보이지만, 폭우 이후 그들이 다시 ‘밑으로’ 내려가는 장면은 현실의 중력을 보여준다. 이 상승과 하강의 반복은 곧 인간 욕망의 순환 구조다. 아무리 올라가도, 욕망은 더 높은 곳을 요구한다. 그 욕망의 끝은 더 이상 위가 아니라, 아래를 향한 붕괴로 귀결된다.
이 공간적 대비는 철학적으로 볼 때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와 닮아 있다. 동굴 속 인간이 그림자를 진리로 착각하듯, 김가족은 부자의 공간을 진정한 행복이라 믿는다. 그러나 그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그들은 자신이 ‘타인의 빛 속에서만 존재하는 그림자’임을 깨닫게 된다. 이때 욕망은 단순한 계급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불안 그 자체가 된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김기택(송강호)은 박사장을 살해한다. 그 행위는 단순한 분노의 폭발이 아니라, 욕망이 한계에 부딪혀 파국으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냄새’라는 단어가 던져진 그 찰나, 그는 자신이 아무리 위로 올라가도 결코 ‘다른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절망을 자각한다. 그가 결국 지하실로 숨어드는 장면은 욕망이 낳은 최종적 아이러니다. 올라가려는 욕망은 그를 다시 ‘밑으로’ 떨어뜨린다.
영화 '기생충'의 공간은 사회 구조의 은유이자, 인간 내면의 지도다. 위와 아래는 단순한 경제적 위치가 아니라, 존재의 층위를 나타낸다. 욕망이 위로 향할수록 인간은 자신이 밑에 있음을 더욱 자각한다. 결국 ‘기생’은 사회적 관계 이전에, 인간이 스스로의 욕망에 기생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영화 '기생충'이 보여주는 비극은 욕망 그 자체가 죄가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준다. 욕망은 인간이 가진 본능이다. 욕망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욕망을 어떻게 다루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어쩌면 욕망이 정당하게 실현될 수 없는 세상이 문제 아닐까? 우리는 모두 빛을 향해 올라가려 하지만, 그 빛은 언제나 타인의 집 창문 너머에서만 비친다. 그 빛에 끌려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또 다른 누군가의 그림자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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