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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266

도시 인문학 9 - 서울, 기억, 속도 그리고 광장 기억과 망각의 도시서울은 기억의 도시일까, 망각의 도시일까. 경복궁과 종묘, 광화문과 덕수궁은 오랜 시간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지만, 그 사이사이 들어선 고층 빌딩과 재개발 구역들은 과거의 결을 끊어낸다. 일제강점기에는 총독부가 왕궁 앞에 세워졌고, 해방 이후에는 그 건물이 철거되어 과거의 궁이 다시 들어섰다. 이러한 반복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권력의 얼굴을 어떻게 바꾸어왔는지를 보여준다.도시는 기억을 품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러나 서울은 종종 과거를 지우는 방식으로 미래를 만들었다. 청계천 복원 사업은 기억의 회복일까, 새로운 포장의 시작일까. 세운상가 철거 논란, 경희궁터의 아파트 단지 조성 등은 도시가 어떻게 과거를 ‘선택적으로’ 기억하는지를 보여준다. 서울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어떤 과거를 기.. 2025. 6. 10.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카르페 디엠, 표현과 저항 그리고 문학 1989년, 피터 위어 감독은 세상에 기억될 영화를 내놓는다. 한국에 들어오면서 제목에 오역이 있었다. Society는 '사회'로 번역하기보다 '동호회' 혹은 '모임'으로 번역이 되어야 했다. 사전의 1번 뜻만 외웠던 당시에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세계적인 배우였던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을 맡았다. 전통, 명예, 규율, 최고를 원칙으로 삼고 있는 웰튼 아카데미(사립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한다. 이 학교 선배이기도 했던 키팅 선생(로빈 윌리엄스)은 새로운 방식의 수업과 틀에 벗어난 일들을 하며 아이들을 변화시킨다. 키팅 선생이 학창 시절 활동했던 '죽은 시인의 모임'을 알게 된 학생들은 선생님께 클럽 활동을 제안하고 틀에 갇혔던 재능과 감정들을 내뿜기 시작한다. 그중 한 학생은 가족.. 2025. 6. 9.
인문학 없이 사회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가 ? 위기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잃었는가대한민국은 여러 갈래의 위기를 동시에 겪고 있다. 인구절벽과 저출산, 기후위기, 청년 세대의 고립, 정치적 양극화, 그리고 지역 공동체의 해체. 모두가 입을 모아 위기라고 말하지만, 그 원인을 설명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어떤 이는 경제 구조의 문제를, 또 어떤 이는 정책의 부재를 말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인문학의 결여”가 이 위기의 본질적 배경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 말은 과연 타당한가?우리는 지난 20여 년간 대학에서 인문학을 점점 밀어냈다. 철학과, 고전문학, 사학과는 실용성 부족, 취업과의 거리감, 학문 간소화의 명분 아래 축소되거나 폐과되었다. 그 결과, 사회는 점점 ‘효율’과 ‘경쟁력’만을 기준으로 사고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생산성’만으로 설계된.. 2025. 6. 7.
과학과 철학의 경계에서-조선의 하늘을 읽는 법 하늘은 권위다: 천문도의 정치학조선의 하늘은 단지 자연 현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곧 통치의 상징이자 정당성의 원천이었다. 조선 태조는 개국 직후인 1395년, 조선 왕조의 새 질서를 선포하듯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제작하게 했다. 이 지도는 하늘의 별들을 단순히 나열한 것이 아니라, 인간 세계의 질서와 대응시키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1,400개가 넘는 별들은 28수 체계와 12분야로 정리되며, 하늘과 땅, 인간 세계의 조화를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이는 단순한 천문 관측을 넘어, 하늘의 질서가 곧 땅 위의 질서라는 유교적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었다. 천문도는 과학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정치의 언어였다. 하늘을 읽는 자가 곧 왕이었고, 하늘의 이치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통치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도구가 되었다.하.. 2025. 6. 5.
허블의 시선 - 확장, 침묵 그리고 존재 지구 너머를 응시하는 인간의 의지1990년 4월 24일 NASA가 쏘아올린 허블 우주 망원경은 단순한 관측 장비를 넘어선다. 그것은 인간의 시선을 우주의 심연으로 확장한 기술적 사유의 결정체다. 지상 망원경이 대기의 왜곡에 제한을 받는 반면, 허블은 대기권 밖에서 작동하며 빛의 흔들림 없이 우주의 빛을 포착한다. 이는 인간의 감각 한계를 기술로 극복한 상징이며, '보는 것'의 철학적 의미를 다시 묻게 만든다. 플라톤은 감각을 넘어선 이데아의 세계를 상상했지만, 허블은 기술로 감각의 벽을 넘었다. 인간은 더 멀리, 더 깊이 바라보고 싶어 하는 존재다. 이 '시선의 확장'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우주의 일부라는 자각에서 출발한 질문이자,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 2025. 6. 4.
낭만주의 음악가 - 프란츠 슈베르트, 시와 음악, 감정 짧고 조용했던 천재의 생애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 1797–1828)는 오스트리아 빈 근교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 도시 안팎에서 보냈다. 학교 교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교육을 받았으며, 음악적 재능이 일찍부터 두드러졌다. 그는 빈 궁정 예배당 성가대원이었고, 안토니오 살리에리에게 작곡을 배웠다. 그러나 정규 교육보다는 주변의 음악가들과 친구들 속에서 스스로를 다듬었고, 20대 초반부터는 교사직을 버리고 본격적인 작곡 활동에 나섰다. 그는 거대한 후원자도, 국제적인 명성도 없었지만, 내면의 감정과 시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데 삶을 바쳤다. 31세의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는 약 1,500곡에 달하는 작품을 남겼으며, 사후에야 비로소 그 진가가 드러나 낭만주의 음악의 선구자로.. 2025. 6.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