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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인문학 없이 사회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가 ?

by Polymathmind 2025. 6. 7.

위기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잃었는가

대한민국은 여러 갈래의 위기를 동시에 겪고 있다. 인구절벽과 저출산, 기후위기, 청년 세대의 고립, 정치적 양극화, 그리고 지역 공동체의 해체. 모두가 입을 모아 위기라고 말하지만, 그 원인을 설명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어떤 이는 경제 구조의 문제를, 또 어떤 이는 정책의 부재를 말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인문학의 결여”가 이 위기의 본질적 배경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 말은 과연 타당한가?

우리는 지난 20여 년간 대학에서 인문학을 점점 밀어냈다. 철학과, 고전문학, 사학과는 실용성 부족, 취업과의 거리감, 학문 간소화의 명분 아래 축소되거나 폐과되었다. 그 결과, 사회는 점점 ‘효율’과 ‘경쟁력’만을 기준으로 사고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생산성’만으로 설계된 세계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가 놓친 것은 단순히 학과 하나가 아니라, 인간과 공동체에 대한 성찰의 틀이었는지도 모른다.

인문학의 부재가 위기를 초래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물론, 인문학의 부재가 위기의 직접 원인이라는 주장은 객관적 사실이라기보다는 사회문화적 해석에 가깝다. 통계로 ‘인문학 결여 수치’와 ‘국가 위기 정도’를 대조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인문학의 기능(곧 타자에 대한 이해, 역사로부터 배우는 능력, 윤리적 판단, 공공성의 사고)는 분명 사회적 안정을 위한 중요한 기반이다.

문제는 그 결여가 단번에 위기를 낳았다기보다는, 점진적인 감각의 마비를 유발했다는 점이다. 정치는 점점 단기적 성과에 매몰되고, 정책은 인간적 고려보다 통계적 효율에 의존하게 되었다. 기업은 사회적 책임보다 이윤 추구에 집중하며, 시민은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졌다. 다시 말해, 인문학의 결여는 위기의 ‘토양’이었고, 그 위에 다양한 위기들이 뿌리내리고 성장해온 것이다.

특히 리더십의 부재는 이를 잘 보여준다. 위기의 시대에 진정한 리더는 기술이 아닌 통찰로 세상을 읽어야 하지만, 한국 사회는 통찰력보다는 스펙과 실적으로 사람을 판단해왔다. 우리가 진정한 리더를 만나지 못한 이유도, 어쩌면 오랜 시간 철학과 교양을 사회의 변두리로 밀어낸 데 있지 않을까?

인문학은 사치가 아니라 생존의 도구다

일부는 말한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인문학은 사치 아니냐”고. 그러나 오히려 묻고 싶다. 인문학이 사라진 이 사회는 과연 잘 살고 있는가? 우리는 외면적으로는 ‘성공’한 사회가 되었지만, 내면적으로는 위태롭다. 불신과 혐오, 고립과 무기력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정서적·문화적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건 과연 기술과 정책만으로 충분한가?

인문학은 인간을 다시 중심에 놓게 만든다. 그것은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위기의 시대일수록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는, 결국 문제를 기술적으로만 봉합하다 스스로 붕괴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필요한 것은 해답이 아니라, 더 나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힘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인문학이 길러준다.

대한민국의 위기를 인문학의 결여와 직접 연결 짓는 것은 단정할 수 없지만, 그것이 위기의 성격을 더욱 복잡하고 심화시킨 중요한 배경 요인임은 부정할 수 없다. 객관적 수치로는 설명되지 않지만, 사회가 점차 인간다움을 잃어가는 과정 속에서 인문학의 부재는 분명히 작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인문학 없이, 정말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