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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잃어버린 것 12 - 비판 vs 비난 오늘날 우리는 너무 쉽게 말한다. SNS의 짧은 문장, 익명성의 언어 속에서 ‘비판’과 ‘비난’의 경계는 희미해졌다. 누군가의 실수나 의견이 드러나면, 그것은 즉시 여론의 표적이 된다. 자신의 자유를 말하고 있지만 이젠 그 자유를 지키거나 내세우기엔 너무 힘들어졌다. 정작 비판의 말속에는 타인을 향한 분노와 불안, 그리고 도덕적 우월감이 섞여 있다. 비판도 언제든지 얼마든지 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한 비판도 얼마든지 언제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점점 길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비판’과 ‘비난’은 닮은 듯하지만 전혀 다른 단어다. 비판은 옳고 그름을 가려 판단한다는 뜻을 지닌다. 즉, 사유의 결과이며 이성의 언어다. 반면 비난은 옳지 않음을 들어 나무란다는 뜻이다. 이는 감.. 2025. 10. 21.
현실을 향한 시선 - 에두아르 마네, 근대 미술의 시작 19세기 중엽, 파리는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문이었다. 산업혁명은 도시의 거리를 메웠고, 자본과 기계, 부르주아의 욕망이 예술의 풍경을 바꿔놓았다. 그러나 화단의 중심에는 여전히 고전적 신화와 종교가 자리하고 있었다. 예술은 현실을 재현하기보다 이상을 그리는 수단이었고, 인간의 삶보다는 신의 상징이 주제를 지배했다. 이때 등장한 화가가 바로 '에두아르 마네'였다. 그는 더 이상 신화의 뒤편에서 미를 찾지 않았다. 그에게 미는 ‘지금, 여기의 현실 속 인간’에 있었다.마네의 등장은 단순한 회화적 변혁이 아니라, 근대성, 그 자체의 시각적 선언이었다. 그는 시대의 변화를 감각적으로 체험한 첫 화가였다. 산업화된 도시, 군중의 익명성, 상업화된 욕망, 그리고 개인의 고독. 이 모든 새로운 현실이 그의 화폭 속.. 2025. 10. 20.
우주적 인간주의자 - 칼 세이건, 코스모스(우주) 철학자 인간은 언제부터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였을까? 갈릴레오와 코페르니쿠스의 망원경이 하늘을 열었을 때, 케플러와 뉴턴으로 이어지는 1차 과학혁명 때였다. 이때 인간의 자존심은 무너졌다. 그 상실의 자리에서 또 다른 시야가 열렸다. 2차 과학혁명은 산업혁명의 시작되고, 3차 과학혁명으로 더 먼 우주로 나아가며 이때 인간이 비록 중심은 아닐지라도,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자각 한다. 칼 세이건은 바로 그 인식의 경계에 서 있던 사람이다. 그는 과학자이자 시인이었고, 합리주의자이자 인문주의자였다. 그의 철학은 냉철한 이성과 따뜻한 경외가 맞닿은 지점에서 출발한다.세이건의 핵심은 “우리는 별의 먼지로 이루어져 있다”는 명제다. 이 문장은 단순한 과학적 사실을 넘어, 인간 존재에.. 2025. 10. 18.
후기 낭만 음악가 - 구스타프 말러의 철학 필자가 미국에서 유학 중, 학교에서 주최하는 말러 콩쿨에 나간 적이 있었다. 말러의 곡은 처음 접했던 터라 생소했고, 그에 대해 잘 몰랐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도 교수님과의 이야기를 하는 중에 말러에 대한 첫인상은 생소함에서 호기심으로 바뀌었고, 음악에 푹 빠지게 되었다. 아쉽게도 그 콩쿨에서는 입상을 못했지만, 준비과정에서 받았던 그의 숨결은 나의 음악을 바꾸고도 남았다. 세계 전체를 담고 싶은 음악말러는 “교향곡이란 세계를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짧은 문장에 그의 철학이 그대로 담겨있다. 그는 음악을 통해 인간 존재 전체, 즉 생명, 고통, 구원, 죽음, 그리고 그 너머의 세계를 모두 포괄하고자 했다. 그가 살던 시대는 근대적 확신이 붕괴하던 시기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기술의 힘으로 자연.. 2025. 10. 17.
도시 인문학 19 - 폴란드 바르샤바, 역사와 음악이 흐르는 도시 파괴와 재건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는 13세기 작은 마을에서 성장하여 1596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수도로 지정된 이후,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 독일의 폭격과 바르샤바 봉기로 인해 85%가 파괴되었다. 특히 구시가 광장은 거의 완전히 무너졌지만, 시민들은 도시를 정교하게 재건하며 역사적 공간과 공동체적 기억을 되살렸다. 대규모 복원 작업이 국가적 의지의 산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 인정되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한다. 오늘날의 바르샤바는 과거의 참혹함과 현재의 활기가 공존하는 도시로, 재건된 건물과 광장 하나하나가 도시의 시간과 인간의 끈기를 보여준다.쇼팽과 도시의 예술적 정체성바르샤바는 음악과 예술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재확인해.. 2025. 10. 16.
영화 '쉰들러 리스트' - 인간을 구한 인간 1993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가 개봉한다. 필자가 중학교 시절, 아버지께서 꼭 봐야하는 영화라며 가족이 모두 보자고 하셨다. 아마 그때 영화관이란 곳을 처음 간 것 같다. 첫 영화관 관람은 나에게 엄청난 각인으로 남았다. 가족과의 관람, 그리고 충격적인 장면들은 사실 중학생인 필자에겐 그러했다.이 영화는 원작 소설 '쉰들러의 방주'를 영화로 제작한다. 영화음악의 대가 존 윌리엄스는 영화의 깊이를 더해준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전쟁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양심, 도덕, 그리고 기억에 대한 질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어둠 속, 한 사람의 선택이 수천 명의 생명을 구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역사적 일화가 아니라 인간성의 가능성을 증언하는 이야기다. 스필버그는 카메라를 통해 폭.. 2025. 10.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