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작곡가인 '자코모 푸치니'는 '베르디' 이후 가장 유명한 오페라 작곡가이다. 그의 음악은 아름다운 동시에 고난도 작곡 기법을 사용한다. 그의 어린 시절은 문제의 연속이었다. 그는 음악을 배우면서 인생이 바뀐다. 결국 명문 밀라노 음악원에 입학하면서 오페라의 길로 들어선다. 앞서 살펴봤던, '토스카' , '나비부인' 등이 대성공을 거둔다. 그의 마지막 오페라 '투란도트'는 아직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작품이다. 그의 작품은 낭만주의 시대의 이탈리아 오페라를 완성하고 현대 이탈리아 오페라의 길을 열었다. 그는 인후암으로 수술받기 직전에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라 보엠'은 사실주의 오페라에 속한다. 왕족이나 귀족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적인 인물들의 인간적인 이야기를 하며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완성시킨다. 서정적인 멜로디와 풍부한 오케스트레이션 그리고 드라마와 음악의 유기적인 결합이 감정을 더욱 흐르게 하고 고조시킨다. 그의 작품은 인간의 감정, 특히 사랑과 고통, 절망과 희망을 섬세하게 표현하여 '마음으로 듣는 오페라'로 여러 유수 오페라 극장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품이다.
사랑의 본질
'라 보엠'에서 로돌포와 미미의 사랑은 이상적이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들의 만남은 따뜻하고 낭만적으로 시작되지만, 시간이 흐르며 사랑은 병과 가난, 오해와 불안 앞에서 점차 지쳐간다. 이 과정은 플라톤이 『향연』에서 말한 사랑의 본질—완전함을 향한 결핍의 충동—을 상기시킨다. 사랑은 결코 완성된 상태로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서로의 부족함을 끌어안으며 성장해 나가는 불완전한 움직임이다. 로돌포는 미미를 사랑하지만, 그녀의 병을 감당할 용기를 잃고 그녀를 떠나려 한다. 그러나 그는 그녀 없이는 자신의 감정조차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처럼 사랑은 타인의 존재를 통해 자신을 비추고, 그 결핍 속에서 인간 존재의 깊이를 경험하게 만든다. 사랑은 감정의 완성체가 아니라, 끊임없는 갈망과 흔들림 속에서 비로소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철학적 체험인 것이다.
자유와 가난
라 보엠의 핵심 배경은 '보헤미안'이라는 정체성이다. 이들은 경제적 풍요를 포기하고 예술과 자유, 우정을 선택한 젊은 예술가들이다. 얼핏 보기엔 그들의 삶은 자유롭고 창조적이며, 진정성 있는 예술을 향해 나아가는 이상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이 자유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허약하고, 낭만은 고통으로 치환된다. 철학자 루소는 문명 이전의 자연 상태를 인간 자유의 이상형으로 보았지만, '라 보엠' 속 보헤미안들은 문명의 바깥이 아닌 그 가장자리에 서 있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제도적 울타리에서 벗어나 있지만, 그러한 자유는 결국 경제적 불안정, 사회적 소외, 죽음이라는 극단적 현실을 감내해야만 가능하다. 자유는 곧 자기 책임의 무게이며, 그 무게는 미화되기 어렵다. '라 보엠'은 우리가 흔히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자유로운 삶’이 실은 얼마나 위태롭고 외로운가를 보여주는, 인간 존재의 실존적 모험에 대한 이야기다.
죽음
미미의 죽음은 라 보엠의 정점을 이룬다. 사랑과 고통, 환희와 절망을 겪은 끝에 그녀는 조용히 숨을 거두며, 삶은 갑작스레 닫힌다. 그러나 죽음이 진짜 끝인가? 하이데거는 인간 존재를 ‘죽음을 향한 존재(Sein-zum-Tode)’라 정의하며, 죽음을 의식할 때 비로소 진정한 자아와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고 말한다. 미미의 죽음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다. 오히려 그녀가 떠난 순간, 남겨진 자들은 그제야 진심으로 그녀를 이해하고,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깨닫는다. 삶은 그 안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 비로소 해석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살아 있을 땐 때로 가볍고 소모적이었던 감정들이, 이별을 통해 의미와 깊이를 갖게 된다. 미미는 사라졌지만, 그녀의 존재는 로돌포의 눈물 속에서 영원히 각인된다. 라 보엠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인간 존재가 어떻게 기억과 감정 속에 남아 시간을 초월하는지를 보여주는, 철학적 송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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