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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기하학의 역사와 철학 - 선을 긋는 인간

by Polymathmind 2025. 5. 22.

기하학의 역사

기하학의 시작은 철학보다 훨씬 실용적이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매년 나일강의 범람 경계를 다시 측량해야 했기에, 땅을 재는 기술이 필수적이었다. 이처럼 기하학은 처음부터 공간을 다루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기술은 단순히 땅을 재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인간은 도형을 그리면서 점차 공간의 질서를 인식하기 시작했고, 질서 안에서 진리를 찾고자 했다. 고대 그리스는 이러한 기술을 철학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특히 플라톤기하학을 “감각을 넘어선 세계를 향한 지적 수련”으로 보았다. 기하학 도형은 현실에는 완벽하게 존재하지 않지만, 인간의 정신 안에서는 이상적으로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세계였다. 플라톤의 제자인 유클리드사유를 체계화하여 '기하학 원론'집필했고, 이는 수학사뿐만 아니라 서양 철학사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기하학은 이제 단순한 계산법이 아닌, 논리와 진리의 언어되었다.

기하학의 기초, 피타고라스 정리

기하학의 확장

중세 이슬람 세계는 유클리드 기하학을 계승하고 발전시켰다. 그들은 기하학을 건축과 천문학, 꾸란 장식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했고, 이를 통해 기하학은 실용과 예술, 신앙이 만나는 매개체로 거듭났다.

르네상스 시대에 기하학은 예술과 과학의 다리된다. 레오나르도 빈치나 알브레히트 뒤러는 기하학적 원리를 통해 원근법을 확립했고, 황금비와 같은 비례 개념은 조화롭고 이상적인 미의 기준이 되었다. 시기 기하학은 ‘보이는 세계’정확히 재현하는 수단이었고,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재현할 있다는 르네상스적 낙관을 상징했다.

17세기에는 데카르트좌표기하학을 창안하며, 기하학은 대수학과 결합해 한층 추상적인 체계를 갖추게 된다. 공간은 이제 숫자로 표현되고 계산될 있게 되며, 이는 이후 뉴턴의 고전역학라이프니츠의 미적분학으로 이어진다. 기하학은 우주를 설명하는 핵심 언어로 자리 잡았고, 근대과학의 기초되었다.

기하학의 철학

19세기, 오랜 시간 ‘진리’여겨졌던 유클리드 기하학의 세계관이 균열을 맞는다. 러시아의 로바첸스키독일의 리만 등은 유클리드의 평행선 공리를 부정하며 비유클리드 기하학만들어냈다. 이는 단지 수학의 발전이 아니라, 철학적 전환이었다. 우리가 믿고 있던 공간의 구조, 진리의 기준이 가정불과하다는 사실은 철학적으로 엄청난 의미를 갖는다. 기하학은 이상 하나의 세계를 설명하는 유일한 도구가 아니라, 다양한 세계를 상상하고 구성할 있는 사유의 실험실되었다.

이러한 사고는 아인슈타인상대성 이론으로 이어졌다. 그는 리만 기하학을 바탕으로 시공간이 굽어진다는 새로운 우주론을 제시했다. 다시 말해, 기하학은 단지 정적인 도형의 학문이 아니라, 우주와 존재를 설명하는 철학적 언어되었다.

오늘날 기하학은 예술, 건축, 물리학, 컴퓨터 그래픽, 데이터 시각화 실로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본질은 여전히 같다고 있다. 기하학은 인간이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상상하는 이다. 그것은 단지 점과 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이성이 그린 우주의 초상화다. 즉, 우리가 세상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