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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오페라 '나비부인' - 동서양의 충돌, 슬프지만 우리 이야기

by Polymathmind 2025. 1. 18.
오페라 '나비부인' 중 합창

오페라 '나비부인'

오페라 '나비부인'은 이탈리아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가 작곡한 작품으로, 일본 문화와 서구 문화의 충돌을 중심으로 한 비극적인 러브스토리이다. 원작은 '존 루터 롱'의 '마담 버터플라이 - 나비부인'이었다. 당시 유럽과 미국은 제국주의를 바탕으로 무역을 빌미로 한 '침략'을 한다. 이 소설도 그저 궁금하고 호기심을 가득했던 모르는 나라의 이야기를 주제로 담았다. 이 소설은 같은 제목으로 연극으로 제작되고, 이 연극을 '푸치니'가 보고 오페라로 작곡한다. 당시 유행하던 '이국주의-오리엔탈리즘'에 편승한 작품으로 낯설고 매력적이면서도 자신들의 우월성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문화를 소비했다. 
초연은 대실패, 관객들은 긴 작품에 지쳤고, 감정 구걸하는 여주인공에 질렸다. 초연 실패 후, 수정을 거쳐 재공연은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대성공을 거두고, 푸치니 작품 중 가장 사랑받는 작품이 된다. 작년이 푸치니 서거 100주년이라 전국에서 오페라 '나비부인'은 여러번 공연되었다. 그러다, 3.1절 새벽, 공연 실황 방송을 보내 논란이 된다. 오페라 중간에 '기미가요'가 나오는 부분이 3.1절과 맞지 않다는 뉴스다. 물론 고려하지 않고 방송을 내보낸 것은 실수다. 하지만, 푸치니는 잘못이 없다. 일본이 배경이니 일본의 음악과 선율이 나오는 건 당연하니까. 방송국 놈들의 잘못이다. 오페라의 내용은 구글링 하면 누군가 잘 정리했을 것이다. 

동서양의 충돌

이 작품의 속을 들여다 보자. 일본은 에도 막부의 말기와 메이지 유신의 중간에서 혼란한 상황이었다. 메이지 유신의 성공으로 서구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근대화를 추진한다. 이미 네덜란드는 16세기 중반 진입하고, 미국, 프랑스 등 여러 나라들이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으로 들어온다. 오페라의 배경이 되는 곳은 '나가사키'이다. 일본 최초의 무역 항구, 1945년 8월 9일, 두 번째 원자폭탄 투하, 짬뽕과 카스테라, 미쓰비시 중공업(전범기업)의 도시, 그리고 대마도가 여기 소속의 섬이다. 나가사키는 유럽과 미국에게는 충분히 의미 있는 도시이다. 대한민국도 그렇지만...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충돌 장면은 뭐가 있을까? 
첫 번째는 미해군 소속의 핑커톤과 영사관 샤플레스의 1막 시작의 대화다. 핑커톤은 일본 게이샤와 결혼을 준비하는데, 일종의 계약으로 간주하며, 자신의 호기심을 '소비'하려는 태도을 보인다. 미국 국가를 부르며 자신의 문화와 가치가 우월하다며 일본 문화를 무시한다. 그저 이국적인 곳에서 매력적인 여성을 만나 '소유'하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 
두 번째는 나비부인의 개종이다. 나비부인은 미국인 핑커톤과 결혼하기 위해 불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다. 이는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희생'하며 서구의 가치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나비부인의 의지로 보이지만, 당시의 흐름은 서구의 종교적 동화를 강요받는 모습을 상징한다. 실제로 나가사키에 기독교, 천주교 인구가 일본에서 가장 많다. 
세 번째는 영사과 샤플레스이다. 핑커톤이 나비부인에 대한 진정성이 없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에게 가벼운 뉘앙스로 넘어간다. 이는 일본에 대한 도덕적 무관심을 드러낸다. 
마지막으로는 나비부인의 자살이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결말은 서구 문화가 동양 문화를 착취하고 희생을 통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구조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즉 제국주의적 구조가 드러난다. 

슬픈지만 우리 이야기

그저 있을법한 슬픈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에 벌어졌던 역사다. 분명 서구의 관점에서 본다.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서구 문화는 동양 문화를 단순하고 수준 이하로 묘사하며 오리엔탈리즘-이국주의를 이해했다. 당연히 순종하고 희생하는 고정관념을 갖게 했다. 장소가 일본일 뿐 서구 열강들이 동양을 봤던 관점은 왜곡되어 있었다. 자신의 쾌락과 편의를 위해 한 인생의 파괴를 그저 무지한 슬픔으로 덮었다. 그것이 그 슬픔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은 이 무지함을 그대로 배워 우리를 파괴한다. 그들은 일본식 제국주의를 통해 '문명화의 사명'을 주장하며 자신들의 우월성을 내세운다. 핑커톤이 나비부인을 이용하고 무시하고 파괴했던 태도와 매우 닮았다. 나비부인이 기독교로 개종했듯 우리의 정체성을 희생하도록 강요한다. 나비부인은 자신을 희생했지만 대한민국은 저항하며 정체성을 지켰다. 

그렇다. 바로 역사다. 역사는 반복된다. (앞의 역사관련 글 참조) 일본은 서구 제국주의 피해자이면서 대한민국과 동아시아에서는 가해자이다. 이 역사는 지금도 계속된다. 물리적인 침략은 아니지만 문화적, 경제적 종속의 형태로 나타나며 지속되고 있다. 역사가 반복되는 구조적인 원인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조지 산타야나의 "역사를 모르는 자는 그것을 반복할 운명에 처한다"의 말이 떠오른다. 무지하면 실수를 반복한다. 역사를 보며 실수를 파악하고 실수의 횟수를 줄이는 것, 그것이 우리가 더 나은 미래로 이끌어 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내가, 당신이 해야 할 일이다.